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마르코 3장 22-30) - 2442

Author
신부님
Date
2022-01-22 19:21
Views
104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42

2022년 1월 24일 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마르코 3장 22-30)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트 3, 22-30)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내가 좋아 하는 일과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는 그리스도인으로써가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삶을 넘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말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행 하는 가를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관점에서 유능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당신께서 마음에 드시는 사람들을 뽑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도가 된다고 하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고 질문하십니다.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사랑하게 하지만 사탄은 미움과 증오를 불러 일으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마귀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이 들렸다.’ 거나 당신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하는 율법학자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아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해하기가 힘들게 들립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 28-29)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누구든지 용서받기를 원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용서받지를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어떠한 죄든지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제가 있습니다. 참으로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회개’가 필수 조건입니다. 마르코 복음 1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짓든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신성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가 있는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질문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과 ‘성령을 모독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면 하느님과 예수님을 거스르는 일반적인 죄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죄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부정하는 죄를 말합니다. 즉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이시고 이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본질을 부정하고 용서하심을 부정하는 죄가 바로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거부하는 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이 들렸다든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의 말대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면, 우두머리 마귀의 힘을 빌려서 우두머리에게 직접 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작은 억압에서 벗어나 더 큰 억압 속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 내신 것은 사람들을 마귀에게서 유래하는 억압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 죄에서의 해방은 용서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 내신 것을 부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사업 모두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부정하게 되면 용서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너무 큰 죄를 지어서 용서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참 회개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부정하게 되면 바로 이것이 성령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Total 2,626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2626
New 희망의 시작 - 신발에게 배우는 교훈(요한 6,60ㄴ-69) - 3188
신부님 | 2024.04.18 | Votes 3 | Views 235
신부님 2024.04.18 3 235
2625
New 희망의 시작 - 주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요한 6, 52-59) - 3187
신부님 | 2024.04.17 | Votes 3 | Views 361
신부님 2024.04.17 3 361
2624
New 희망의 시작 - 만나와 생명의 빵(요한 6, 44-51) - 3186
신부님 | 2024.04.16 | Votes 4 | Views 416
신부님 2024.04.16 4 416
2623
New 희망의 시작 - 사랑에 기초한 원칙과 정의의 적용(요한 6, 1-15) - 3181
신부님 | 2024.04.16 | Votes 0 | Views 27
신부님 2024.04.16 0 27
2622
New 희망의시작 -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찾는 노력(요한 6, 35-40) - 3185
신부님 | 2024.04.15 | Votes 5 | Views 592
신부님 2024.04.15 5 592
2621
New 희망의 시작 - 이해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요한 6, 30-35) - 3184
신부님 | 2024.04.15 | Votes 2 | Views 404
신부님 2024.04.15 2 404
2620
New 자비와 은혜에 대해서(요한 6, 22-29) - 3183
신부님 | 2024.04.15 | Votes 0 | Views 181
신부님 2024.04.15 0 181
2619
New 희망의 시작 - 불행과 행복의 분기점 (요한 6, 16-21) - 3182
신부님 | 2024.04.15 | Votes 0 | Views 24
신부님 2024.04.15 0 24
2618
희망의 시작 -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요한 3, 31-36) - 3180
신부님 | 2024.04.09 | Votes 4 | Views 551
신부님 2024.04.09 4 551
2617
희망의 시작 - 성과 속의 만남(요한 3, 16-21) - 3179
신부님 | 2024.04.08 | Votes 5 | Views 582
신부님 2024.04.08 5 582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