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마태 10,34 -11,1) - 368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680
2025년 7월 14일 월요일 묵상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마태 10,34 -11,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
공자께서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고 했습니다. 이는 진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자세를 말합니다. 반면 니체는 “선한 싸움은 그 자체로 평화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진리를 위한 투쟁이 때로는 편안한 일시적 평화보다 더 가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 두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통하여, 우리 신앙인의 삶이 편안함보다는 진리와 정의를 향한 싸움임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 독서인 탈출기 1장은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파라오가 등장하자,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가혹하게 억압합니다. 벽돌을 굽고 밭일을 시키며, 심지어 남자 아기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억압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하느님께 간절히 나아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이처럼 박해는 믿음의 약화가 아니라 더욱 깊은 의탁의 기회가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뢰는 고통 속에서 더욱 굳건해집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갈등 속에서 우리는 더욱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조차도 복음 때문에 불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
평화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어찌하여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시는 걸까요?
이는 물리적인 폭력의 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칼’은 세속적인 가치와 하느님의 진리 사이의 영적인 분리, 곧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상징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통과 단절, 선택의 고통을 뜻합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러 왔다.” 이 말씀은 진리를 따르는 일이 인간적인 우선순위—가족, 안락함, 사회적 평판—보다 앞서야 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것은 자기 이기심, 세속의 욕망, 죄와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이 싸움은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칼”이며, 이 칼은 우리를 찌르고 상하게 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영혼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하느님의 수술용 칼입니다.
이 칼을 통해 우리는 거짓 평화와 세속의 유혹을 끊어내고, 참된 자유와 구원에 이르는 길로 나아갑니다. 이 길은 때로 외롭고 힘들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편안한 평화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진리의 칼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지만, 그 길 끝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담대하게 이 칼을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진리의 길, 사랑의 길, 구원의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대면하게 될 고난조차도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끌 것임을 믿읍시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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