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 11,20-24) - 3681

Author
신부님
Date
2025-07-13 05:22
Views
84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681

2025년 7월15일 화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 11,20-24)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마태 11,21)

오늘은 13세기 프란치스코회의 뛰어난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거장이셨던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모든 분과 프란치스코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인께서는 '지식'과 '사랑', '이해'와 '믿음'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단순히 신학을 연구한 학자를 넘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이르는 길을 보여준 영적 스승이셨습니다.

교회는 그를  “세라핌적 박사(Doctor Seraphicus)”라 부르며 그의 탁월한 영성을 기립니다.

여기서 세라핌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로, 천사 계층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속하는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그분을 찬양하며,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됩니다. '불사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과 빛을 상징합니다.이 칭호는 성인의 신학이 단순한 이성적 지식을 넘어선 뜨거운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대표 저서인 《영혼의 하느님께 이르는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에서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셨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사랑으로 타오르며, 사랑은 하느님께 이르는 불꽃이 된다.” 지식은 머리에서 시작되지만, 사랑은 가슴에서 피어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지식과 사랑이 함께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참되게 만날 수 없다고 믿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고을들을 향해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십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마태오 11,21)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과 이성으로는 예수님의 행적을 접했지만, 마음의 회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내적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은총 앞에서 마음이 닫혀 있으면, 우리는 결국 하느님의 심판의 날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의 거울이 됩니다.

되돌아보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도 실제의 삶은 변화되지 않은 채 무관심 속에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성인께서는 이러한 무관심과 냉담을 깨뜨리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면서 더욱 깊이 하느님께 무릎 꿇었고, 지식 안에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셨습니다. 그에게 신학은 단지 분석이 아니라 예배였고, 진리는 개념이 아니라 인격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기적을 단순한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의 탄식으로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를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그분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게 하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받고 있음에도, 무뎌진 마음으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 보나벤투라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앎이 사랑으로 이어질 때, 그 지식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된다.”

우리도 회개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로 이르는 여정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성체 앞에서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며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 보나벤투라 주교님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성인의 삶을 본받아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말씀의 거울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모든 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아래의 기도를 바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들었지만, 너무 적게 변화되고, 너무 적게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합니다. 성 보나벤투라처럼 사랑으로 타오르는 지혜를 저희 안에 허락해 주십시오. 당신의 기적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말씀 앞에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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