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게하는 믿음(마태 25-27)- 368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682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는 믿음(마태 11, 25-27))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마태 11,27)
오늘 우리는 탈출기와 마태오 복음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분을 아는 길에 대해 묵상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는지, 이 두 말씀은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깊은 진리를 속삭입니다.
오늘 독서인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맡기셨을 때, 모세는 주저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일상을 살아가며 고통과 시련 앞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과제 앞에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먼저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고 간단 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은 모세의 능력이나 자격보다 하느님의 함께하심이 훨씬 더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그분의 약속은 우리의 두려움을 잠재우고, 우리를 들어 쓰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도는 항상 무위(無爲)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듯이, 하느님의 능력은 우리의 부족함을 넘어 역사하며, 우리의 약함은 오히려 하느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거대한 과제 앞에 서 있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면 두려움은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마태 11,27)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독특한 관계를 선포하시며, 아버지를 온전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들인 당신을 통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지식(gnosis/다아트), 지혜(sophia/호크마), 슬기(synesis/비나) 만으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지식은 정보를 아는 것이고, 슬기는 그 정보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며, 지혜는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통찰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능력을 넘어서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로만 이해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제자에게 "깨달음은 오직 스승을 통해 전달된다"고 가르치듯,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그분의 가르침, 사랑과 희생, 그리고 부활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소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그분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처럼 때때로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히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지식과 슬기로 하느님을 다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배우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참된 지혜를 얻게 됨을 깨닫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봅시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동행 안에서 변화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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