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카 7, 11-17) - 3734

Author
신부님
Date
2025-09-14 04:47
Views
64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34

2025년 9월 16일 화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카 7, 11-17)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루카 7,15)

오늘 우리는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탈무드에서도 “눈물은 하느님께 닿아 가장 먼저 응답되는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고통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반드시 함께하신다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눈물이 하느님의 자비와 만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나인이라는 작은 고을, 성문 앞에서 벌어진 장면은 단순한 장례 행렬이 아니라 한 여성의 삶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외아들의 죽음은 곧 생존의 길마저 닫히는 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주님께서는 그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루카 7,13) 다가가십니다. 주님의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힘이었습니다. “울지 마라”라는 위로의 말씀,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며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신 권능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젊은이는 다시 일어나고, 어머니에게 돌려졌습니다. 단순히 아들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과 희망, 공동체의 믿음이 회복된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루카 7,16)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258)는 바로 이 ‘자비의 복음’을 삶으로 증언하신 분들입니다.

성 고르넬리오는 로마의 박해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돌보셨습니다. 특히 박해 시기에 배교했던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심으로써, 교회의 자비와 화해의 길을 지켜 주셨습니다.

성 치프리아노는 카르타고의 주교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겪으셨고, 교회 일치를 위해 고르넬리오 교황과 깊은 친교를 이루셨습니다. 결국 치프리아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의 피로 신앙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두 분의 삶은 나인 성에서 아들을 되찾은 과부의 기쁨과 맥이 닿아 있슴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자비는 단순히 눈물 닦아 주는 위로를 넘어서, 새로운 공동체의 희망을 세워 주십니다.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는 교회가 살아있다는 것을, 죽음과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가 주님의 자비로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신 산 증인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나인 성문 앞’의 광경은 되풀이됩니다. 고통 속에서 울고 있는 이들,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 사회적으로 버려지고 외면당한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는 그들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다가가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자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입니다.

중국 고전에서는 “인자한 이는 남의 슬픔을 보고 내 것처럼 여긴다”(仁者見人之憂而若己憂)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손길과 따뜻한 말로 동행할 때, 그 순간 우리는 주님의 손길을 대신하는 도구가 됩니다.

복음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루카 7,17)라고 전합니다. 이는 단지 기적의 소문이 아니라, 자비가 퍼져 나갔다는 의미입니다.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가 보여준 신앙의 용기와 자비의 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흘러넘치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자비의 통로가 되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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