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Feast of Our Lady of Guadalupe(즈카 2, 14-17; 루카 1, 26-38) - 380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08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Feast of Our Lady of Guadalupe(즈카 2, 14-17; 루카 1, 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대림 시기도 이제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대림시기를 지내는 중간에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자이신 ‘과달루페의 성모님 축일’이 함께함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531년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와 오늘 전례의 말씀들이 어우러져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오늘 제1독서(즈카 2, 14-17) 에서 즈카르야 예언서는 벅찬 기쁨을 선포합니다.
“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즈카 2,14)
이 말씀은 구약의 예언이면서 동시에 신약의 성취를 알리는 서곡입니다.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한가운데’에 머무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복음(루카 1,26-38)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마리아의 순명(“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을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복자들의 압제와 전염병으로 고통받던 원주민들에게 성모님께서는 “내가 너의 어머니로서 여기 있지 않느냐?” 하시며 그들 ‘한가운데’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이들은 그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은 여전히 불평과 미움으로 가득 차 보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유명한 문답을 떠올리며 그 답을 찾아봅니다.
무학대사는 태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안견돈 불안견불 (豕眼見豚 佛眼見佛)”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권력과 욕망이라는 ‘돼지의 눈’으로 본다면,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는 그저 가난한 시골 소녀일 뿐이고, 테페약 언덕의 후안 디에고는 배우지 못한 원주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서 어떠한 희망도, 구원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눈’, 즉 ‘하느님의 눈’을 품은 이들은 다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천사의 엄청난 예고 앞에서도 교만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가장 겸손하고 순수한 눈으로 하느님의 뜻을 바라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이 ‘피아트(Fiat,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의 응답이야말로 내 안의 ‘돼지’(이기심, 고집, 두려움)를 몰아내고, 하느님의 뜻을 담는 그릇이 되는 순간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님께서 발현하실 때, 주교와 권력자들에게 먼저 가신 것이 아니라 겸손한 후안 디에고를 선택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히 순명할 줄 아는 ‘깨끗한 마음’만이 하느님의 형상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면, 때로는 정의가 메말라 보이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때문에 답답해하며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내가 주인 노릇을 하려는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처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비우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낮아질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도구로 삼아 당신의 평화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편견과 이기심이라는 ‘돼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잣대가 아닌 믿음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예” 하고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이 성모님을 닮으려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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