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영원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오늘(창세 17,3-9/요한 8,51-59) - 389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96
2026년 3월 26일 목요일
영원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오늘(창세 17,3-9/요한 8,51-5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요한 8,51)
우리는 흔히 시간을 앞뒤로 길게 늘어선 선(線)으로 이해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불확실한 영역이라 믿으며, 그 사이의 좁은 틈새인 '오늘'을 허덕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을 제시합니다.
시간은 흘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영원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았던 미래와 예수님이 선포하신 "나는 있다"라는 현재는 사실 같은 뿌리에서 솟아나는 생명수입니다.
"신앙이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의 계약 안으로 걸어 들어가, 나의 짧은 생애를 영원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신비로운 사건” 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태초부터 약속된 그 거룩한 계약의 주인공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으로 인도합니다.
제1독서(창세 17,3-9)에서 하느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명명하시며 영원한 계약을 맺으십니다. 이는 단순한 이름의 변경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꿈이 한 인간의 삶 속에 이식되는 순간이며, 찰나를 살던 인간이 영원한 역사의 통로가 되는 성찰의 지점입니다.
구상 시인은 그의 시 <오늘>에서 이 신비를 유려하게 노래합니다.
"오늘도 신비의 샘에서 / 한 바가지의 시간을 떠냅니다. / 이 시간은 아브라함의 시간과 닿아 있고 / 태초의 빛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가 오늘 마주하는 24시간은 아브라함이 하느님 앞에 엎드렸던 그 시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 58)
이 말씀은, 당신이 바로 시간의 창조주이시며 계약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내는 '에고 에이미(Ego Eimi, 나는 있다)'의 선언입니다. 이 영원한 진리는 동양의 지혜와도 깊게 공명합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집고지도 이어금지유(執古之道 以御今之有)", 즉 "옛날의 도를 잡고서 오늘의 실유(實有)를 제어한다"고 했습니다. 변치 않는 영원한 도(道)를 붙드는 자만이 비로소 흔들리는 현실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 '옛 도'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영원한 계약'이며, 그 '오늘의 실유'는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율법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마저도 삼켜버리는 영원의 생명력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먼 훗날의 구원을 미리 보고 즐거워했듯이, 우리 또한 오늘이라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이미 완성된 천국을 미리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이름을 새롭게 부르시며, 우리를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리려는 계획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영원한 현재이신 주님, 오늘 저희가 떠올린 '한 바가지의 시간'이 단순히 사라질 허무가 아니라, 당신의 영원에 닿아 있는 축복임을 깨닫게 하소서. 세상의 풍파에 이름이 지워질 때마다, 저를 '계약의 자녀'라 불러주시는 당신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나는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당신의 현존 안에서,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미리 사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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