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요한 11, 19 -27) - 2601

Author
신부님
Date
2022-07-27 21:01
Views
55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601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요한 11, 19 -27)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에제 37,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 25-26)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일 입니다 위의 세분 중의 한 분을  대중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선진국일수록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것의 가장 큰 이유는 닫힌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안다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해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믿음’이 모든 신비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에수님께서 이러한 ‘믿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의 문제를 2000년 전의 사람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리아와 마르타는 모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두 자매는 너무나 다릅니다.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와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루까복음 10장 39-40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뜻대로 해달라고 명령까지 합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말씀을 경청하고 가장 아끼는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당시에 일반 사람의 일년 임금에 해당하는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을 때도 뛰어가서 먼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마리아입니다. 존재로서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마르타는 일하는 것과 지식(아는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으면 마리아는 믿음과 헌신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아는 것’에 머무르는 신앙의 모습을 보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 이것을 믿느냐?" 하시며 여태까지 마르타의 신앙을 이제는 아는 것에서 믿는 것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마르타의 믿음은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믿음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믿음일 수도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이성 안에 갖혀 있는 믿음이기에 하느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 밖에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다가가면 이해가 되지 않던 문제들이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을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 이것을 믿느냐? 하고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믿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이해에서 믿음으로가 아니라 믿음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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