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착한 목자이신 주님(요한 10, 1-10) - 3189

Author
신부님
Date
2024-04-20 06:31
Views
58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89

2024년 4월 21일 월요일

착한 목자이신 주님(요한 10, 1-10)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 9)

시편 23장에서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하느님을 목자라고 표현합니다. 왜 자신을 사자나 호랑이 등과 같은 다른 동물로 표현하지 않고 양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자신이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러한 비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이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비유했을까요?

첫째, 양은 온순하고  말을 잘 듣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도 없습니다. 양은 냄새도 잘 맡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구덩이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양은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만 됩니다.

둘째, 양은 앞도 잘 보지 못하고 냄새도 잘 맡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잘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방향 감각이 없어서 누군가가 인도해 주지 아니하면 실종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셋째,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길을 찾지 못하기에, 먹이가 있는 초지가 어디인지 분간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먹이를 책임져 주는 자가 없으면 굶어 죽기 십상입니다.

넷째, 자기 생명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양은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만 됩니다.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른 동물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을 지닌 것도 아닙니다. 머리에 박혀 있는 뿔은 그나마 뒤로 감겨져 있어서 장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생명을 지켜 주지 않는 한, 맹수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자신을 양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찾을 수 없는 무능한 존재,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참된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 자신의 힘만으로는 자기 생명을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두고서  ‘손이 많이가는 신부’라고 표현하는 그 말 속에 이러한 의미들이 다 포함되어 있슴을 느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의 문이신 당신의 삶을 따라서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요한복음의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 5)라고 말씀하시면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제 10장에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계시하십니다. 이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님 당신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비유를 그들은(9장 40절에 나오는 바리사이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9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9장 41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목자와 우리를 양으로 표현하신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양의 특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의  1-2절을 보면, 목자와 도둑이나 강도와의 차이를 양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른데로 넘어들어가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데로 넘어들어간다.’는 것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에서는 목자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고 도둑이나 강도는 양을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다(10절)고 합니다.

3절에서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밖으로 데려나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과 목자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지역의 목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양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따라서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자신의 양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양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것은 양들을 초원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양들을 풀밭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는 목자롤 당신으로 표현하시고 지금은 ‘양들의 문’으로 당신을 표현하십니다.

당시에 양들이 드나드는 문은 하나 뿐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당신자신을 ‘문’으로 표현하시는 것은 당신 만이 양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목자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9)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슴을 강조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사도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라’(사도 2, 38)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목자의 양이 되기위한 조건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회개의 세례가 목자의 양이 되기 위한 조건임을 가르쳐줍니다. 이렇게 양이된 우리는 목자가 안내하는 풀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풀밭으로 가게되는 도중에 광야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광야에는 세가지의 고통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하나는  불의하게 고난을 겪는 것 둘째는 잘못을 저질러서 매를 맞는 것, 그리고 세째는  선을 행하는 데도 고통을 겪는 것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잘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불의하게 당하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과 선을 행 행하면서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는 것은 바로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이라고 합니다(1베드 2, 19-21). 이 은총이 우리가 ‘양들의 문’을 통과하게 할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양으로 표현했을 때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자신을 좀 더 자세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부족한 우리를 당신의 품안으로 불러주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당신의 사랑을 깊이 인식하면서 우리 역시 일상에서 우리를 필요로하는 양들의 착한목자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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