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구원받을 사람의 조건(루카 13, 22-30) - 3362
2024년 10월30일 수요일
구원받을 사람의 조건(루카 13, 22-30)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 22)
“세상은 마음의 크기만큼 좁아지고, 신앙의 깊이만큼 넓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 복음의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 그것은 세상이 좁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좁아졌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그 좁은 마음을 넓히는 힘이며, 그 길은 곧 좁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길이 고통스러워도 결국 선으로 변하고,
믿음의 깊이만큼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넓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백세 인생’을 살아가는 시대에 있습니다.
육신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그 긴 생명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 곧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인에게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세속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이를 더해가며 단지 세월에 순응하는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 속에서 믿음과 사랑을 채워 가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인생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8장 2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만 인용하지만,
그 앞에 붙은 조건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 조건은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인간의 시선에서 본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시선에서 본 인간의 응답입니다.
결국 두 표현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인, 곧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계획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던 때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의 뜻을 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 바람을 이루기 위한 기복적인 기도가 많았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일보다 요구하는 사랑을 더 많이 해왔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는 삶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은총이
내 삶 속에 체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을 돌이켜 다짐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참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지 말고,
그분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의 말과 행동이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
늘 점검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오늘날 우리는 ‘효율’과 ‘편안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최단 거리, 최소 노력으로 최대 만족을 얻는 것이
현명한 인생의 비결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논리를 완전히 거스릅니다.
좁은 문은 관람이 아닌 분투(奮鬪)의 여정입니다.
여기서 “힘써라”는 말, 헬라어 agōnizesthe는
‘치열하게 싸우다’, ‘투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구경이 아니라, 피와 눈물의 결단을 요구하는 영적 싸움입니다.
좁은 문은 자기 부인의 문이며,
회개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십자가의 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넓은 길은 편하지만
결국 자기중심적 고립으로 끝납니다.
반면 좁은 문은 불편하고 고독하지만,
그 끝에는 참된 평화와 자유,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환희가 기다립니다.
루카 복음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인의 분투와 헌신의 과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선언은
그 분투의 여정이 헛되지 않다는 하느님의 보증입니다.
우리가 걷는 좁은 길은 불안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의 길입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지치지만,
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을 엮어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그분의 사랑이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싸움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투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편안함 속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그 길,
그 길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자리입니다.
이 투쟁은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인생을 선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굳은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좁은 문은 작고 불편하지만,
그 문을 통과한 사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문 너머에는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의 나라가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의 부르심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사랑 안으로 이끄시는 은총의 초대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련과 분투는 헛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것을 함께 작용시켜
당신의 선을 완성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우리 모두는 그 좁은 문을 향해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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