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의 권위의 참 모습(1사무 8,4-7.10-22ㄱ / 마르 2,1-12) - 3837

Author
신부님
Date
2026-01-14 09:08
Views
35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7
2026년 1월 16일 금요일
예수님의 권위의 참 모습(1사무 8,4-7.10-22ㄱ / 마르 2,1-12)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권위는 사람을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고 현대사의 거인 넬슨 만델라가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참된 권위’가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권위를 말할 때 흔히 “위에 서는 힘”, “명령하는 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참된 권위는 오히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릎을 낮추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서 드러납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바로 그 권위의 얼굴을 우리 앞에 선명하게 펼쳐 보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확인해야 안심을 합니다. 그래서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자꾸 “강한 리더십”을 찾습니다. 강한 리더, 빠른 해결, 단번의 처방.

오늘 제1독서(1사무 8,4-7.10-22ㄱ)에서 이스라엘 원로들이 사무엘에게 요구한 것도 사실은 그 마음입니다.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1사무 8,5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요구를 단순한 정치 제도 논의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

임금 자체가 악이라는 말이 아니라, ‘임금이 없으면 못 살겠다’는 마음, 다시 말해 하느님 없이도 눈에 보이는 힘으로 안전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짚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갈망한 임금은, 백성을 품는 목자라기보다 빼앗고 징발하는 권력이 될 수도 있음을 사무엘은 경고합니다(1사무 8,10-18 참조). 눈에 보이는 힘은 달콤해 보이지만, 그 힘이 우리 삶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소유”하려 들 수 있는지를 하느님께서 미리 드러내 보이십니다.

이 흐름 속에서 오늘 복음(마르 2,1-12)은 그 유혹을 정면에서 뒤집어 놓습니다. 예수님 앞에 한 중풍병자가 실려 옵니다. 혼자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지붕을 뜯어서라도 예수님께 닿게 하려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절망을 “운반”해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희망을 “뚫고 들어가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종종 이렇게 누군가의 어깨와 손을 빌려 움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방식과 달랐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사람들이 기대한 권위는 “당장 걸어라!” 하고 결과를 즉시 보여 주는 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종종 겉의 불편을 치워 주는 힘만을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깊은 곳을 보십니다. 인간을 안에서부터 묶어 두는 매듭, 죄책감과 수치심, “나는 끝났다”는 낙인, 그 ‘내면의 중풍’을 먼저 풀어 주십니다.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권위는, 먼저 사람 안에 꽁꽁 묶여 있던 존엄을 풀어 주는 권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보이지 않는 은총이 참됨을, 눈에 보이는 치유로 확증해 주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들것은 단지 치료의 도구가 아니라, “이제 너는 눕혀진 인생이 아니다”라는 선언입니다. 과거의 무력함을 상징하던 것이, 이제는 새 삶을 증언하는 표지가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으시고, 사람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권위입니다.

여기서 제1독서와 복음이 한 줄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원한 임금은 “눈에 보이는 통치”였습니다. 그러나 그 통치는 쉽게 빼앗고 징발하는 방식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권위입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걷게 하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집은 단순한 주소가 아닙니다. 집은 ‘내 자리’이며, ‘관계의 자리’이며, ‘존엄의 자리’입니다. 주님은 한 인간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것이 치유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말합니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마르 2,12)

맞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임금, 짐을 덜어 주는 임금,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임금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강한 힘을 주소서”가 아니라, “주님, 당신께 제 삶의 통치권을 내어 드리니 저를 안에서부터 고쳐 주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힘을 붙들수록 불안은 커지지만, 보이지 않는 은총을 믿을수록 사람은 다시 일어섭니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저희가 불안할수록 눈에 보이는 힘을 임금으로 세우려 합니다. 저희 마음의 자리를 다시 주님께 돌려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사람을 일으키는 권위를 배우게 하시고, 우리도 이웃의 지붕을 뜯을 만큼 간절한 사랑과 믿음으로 서로를 주님께 인도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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