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계명의 준수에서 완전함으로 (마태19,16-22) - 3710

Author
신부님
Date
2025-08-16 09:04
Views
90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10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계명의 준수에서 완전함으로 (마태19,16-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 21)

탈무드는  “사람은 가득 찬 주머니보다 비어 있는 주머니에서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것이 채워졌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자리를 잃게 됩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은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느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두 독서와 복음은 바로 이 내려놓음과 자유로움이 참된 완전함의 길임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독서 판관기의 이스라엘은 하느님 대신 바알과 아스타롯을 의지했고(판관 2,11-13), 복음의 젊은이는 재물을 의지했습니다(마태 19,22). 시대와 상황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하느님보다 더 신뢰하는 무언가가 마음의 중심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판관기 2장은 이스라엘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을 저지르고(2,11), 원수의 손에 넘겨져 억압을 받지만, 그들의 탄식을 들으신 주님께서 판관을 세워 구원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2,18).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이전보다 더 타락합니다(2,19). 이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상황과 지도자에 의존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한 젊은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며,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부모 공경, 이웃 사랑을 언급하십니다(마태 19,18-19).

젊은이는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마태 19,20)라고 대답합니다.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마르 10,21).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결정적 부족함을 지적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러나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슬퍼하며 떠납니다(마태 19,22).

‘완전한’(teleios)이라는 말은 단순히 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1베드로 1,15의 말씀처럼,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거룩함은 말과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모든 행실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함은 계명 준수라는 출발점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이웃 사랑의 적극적 실천이며, 나의 안전과 소유를 내려놓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입니다.

탈무드의 지혜처럼, 우리가  손을 비워야 한다는 이유는 더 좋은 것으로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손을 열지 않는 한, 새로운 은총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 인정 욕구, 권력에 대한 갈망, 심지어는 종교적 형식에 대한 안주조차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에게 재물 포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내려놓기 힘든 ‘마지막 한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십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나는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 내려놓음이 곧 완전함의 길이며, 거룩함의 문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말처럼, 내려놓음은 잃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온전히 붙들 수 있는 자유입니다. 판관기의 이스라엘처럼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신앙에서, 복음의 젊은이처럼 소유에 묶인 신앙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주님, 저희가 형식적 신앙이나 계명 준수에 머물지 않고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한 걸음 주님께 가까이 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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