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루카 9,51-56) - 3746

Author
신부님
Date
2025-09-26 07:04
Views
55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46

2025년 9월 30일 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루카 9,51-56)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의 기념일 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탈무드에는 “부는 지혜에 달려 있다. 지혜가 있는 곳에 재물이 있고, 지혜가 없는 곳에 가난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된 안정과 풍요는 단순히 돈이나 재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평화에 달려 있다는 지혜입니다.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의 삶은 바로 이 참된 부요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로니모는 젊은 시절 로마에서 학문과 명예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의 화려함이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시리아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막은 단순한 피신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욕망과 싸우고 하느님과 홀로 마주하는 영적 훈련의 자리였습니다.

그는 금욕과 고독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며, 히브리어를 배우고 성경을 묵상했습니다. 바로 그 고독의 열매가 라틴어 성경, 불가타였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그의 업적을 통해 말씀의 빛을 받고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소음과 불안 속에서 네 자신의 작은 사막을 찾고 있는가?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가?”

오늘 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와 하느님을 찾는 날을 선포합니다.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즈카 8,23).

이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신앙인의 삶이 다른 이들이 붙잡고 싶어 하는 옷자락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말로가 아니라, 삶이 증거가 되어야 하고, 그 증거가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부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굳은 결심을 드러내십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분노하여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태워 버릴까요?”라고 묻습니다. 이는 인간적 본능의 표현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불은 심판과 권능의 표징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스승의 권위를 입증할 기회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불을 내리는 대신, “다른 마을로” 발길을 옮기십니다.

예수님의 길은 보복과 응징이 아니라, 사랑과 인내의 길입니다. 복음은 강제로 주입되는 불길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빛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배워야 할 진정한 길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방식은 인간의 분노와 보복심을 닮은 불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거절을 당하고, 오해를 받고, 때로는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는 보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길이 아니다. 다른 마을로 가라.” 폭력의 길 대신 평화의 길을, 보복의 길 대신 용서의 길을 걸으라는 초대입니다.

탈무드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강한 사람은 적을 이기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자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내면의 분노와 복수심을 넘어, 사랑과 평화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오늘의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성 예로니모처럼 말씀 안에서 자신을 직면하고, 즈카르야 예언자처럼 삶으로 증거하며, 예수님처럼 불이 아닌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의 옷자락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우리의 삶을 붙잡으며 “우리도 함께 가자.”고 말할 것입니다.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가 말씀 속에서 작은 사막을 찾고, 그 고요 속에서 지혜와 평화를 얻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불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 폭력의 길이 아닌 평화의 길을 선택하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댜..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걷는 참된 부요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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