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아는 것과 믿는 것(요한 3,7ㄱ.8-15) - 2520

Author
신부님
Date
2022-04-24 18:39
Views
110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20

2022년 4월 26일 화요일

아는 것과 믿는 것(요한 3,7ㄱ.8-15)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 13-15)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머리에 관념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면 아는  믿는 것은 삶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우상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우상이란 내가 하느님보다 어떤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 다른 것은 다 되는데 이것만은 안됩니다. 하고 말할 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감사를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수 많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있는 우상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니코데모와의 대화의 후반부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전반부의 내용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리사이로서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고 유대인의 최고의회의 한 멤버로서 사회적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승으로 존경 받는 지성인이었고 예수님의 시체를 관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 2)

니코데모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그는 왜 ‘저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신 복수 일인칭 ‘저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믿는다’는 말 대신에 ‘알고 있다’라는 말을 쓸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또하나의 질문은 그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낮에 예수님을 찾아오기에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사람들의 눈도 피할 수 있고 자신의 이성적인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밤을 선택합니다. 나약한 지식인의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그가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스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십니까?” 믿음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성으로 바라보니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분이 또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새로운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사도 9, 2.) 그는 이런 사람들을  찾기만 하면 남 녀 불문하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다마스쿠스로 갑니다. 거의 그곳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며 그의 둘레를 비추고 그는 쓰러집니다. 그 순간 쓰러져서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때 그가 하는 질문이 바로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사도 9, 2-5) 그 때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결국 바오로 사도는 하나니아스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만 세상을 살면서 그러한 눈을 흐리게 하는 유혹들에 우리 자신들이 나약해져 갑니다. 이러한 나약함이 우리에게  새로운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세상이 자신의 삶의 우상이 되어버린 니코데모와 같은 모습을 갖게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나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요한 3, 5)을 말합니다. 물을 말씀으로 대치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자신의 궁금증도 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 13-15) 하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사람의 아들 만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해 주신 예수님을 믿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한다는 확신을 갖고서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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