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손이 많이가는 신부(루카 18,35-43) - 2384

Author
신부님
Date
2021-11-13 19:15
Views
116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84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

손이 많이가는 신부(루카 18,35-43)

“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 18, 41)

저희 본당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저를 두고서 ‘참 손이 많은 가는 신부’라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말씀이 저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비판하거나 나쁜 의도로 표현하기 보다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여러분들의 손길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듣는 지혜를 청했듯이 저는 하느님께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지혜를 청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이 똑 같은 것을 보아도 본 사람마다 자신이 본 것에 대한 느낌이 다름을 봅니다.  자신의 눈으로 다 보지만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만을 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한 맹인을 만나십니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가난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를 바르티메오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제자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맹인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사는 처지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이 맹인처럼 지적인 장애 혹은  정신적인, 영적인 장애 가운데 어떠한 종류든, 이것들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장애를 갖고 삽니다. 이 맹인은 자기의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을 갖고 살아 갑니다. 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성숙과 변화는 어떠한 것이든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알 수 있을때 일어납니다

이 맹인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 보다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들이 대다수였을 것입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케 하는 이야기들 이었을 것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인가 물어봅니다. 죽음의 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날 맹인은 생명의 언어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만나기를 고대했던 바로 그분이, 나자렛 예수님께서 지나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순간 그는 삶의 희망을 가집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절히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하고 두 번씩이나 부릅니다.  뒤에 덧붙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당신이 주님 이십니다. 하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아 이시고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고 믿음을 표하는 것입니다. 이사 35, 5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낮아졌다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외칩니다.

이 간절한 외침이 기도로 들려옵니다. 간절한 그의 외침이 가슴에 아려옵니다. 나는 이렇게 간절하게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의 외침이 나도 이제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야단을 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람들의 꾸짖음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더욱 크게 외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여러자지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비판에 직면해서 더욱작아지는 우리에게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깨우쳐 주는 것 같습니다. 비판에 직면하면 할수록 더욱 굳건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줄 아는 그러한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우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 우리가 부르짖고 당신께 나아가면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심을 보여주십니다. 그의 부르짖음 속에 이미 그의 믿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글을 쓰면서 저도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하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는 질문을 저에게 해 봅니다. 나는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가?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하는 이 말씀이 저의 답이기를 원합니다.

맹인은 자신의 실존 전체를 걸고서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의 대답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그의 답을 들으면서 그의 믿음을 보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즉시 보게된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에수님을 따릅니다.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이 드라마가 나에게 주는 감동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 나병을 치유받고 간 사람은 아홉이었지만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이 맹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도 돌아와서 친미와 감사를 드리는 맹인과 같은 믿음의 삶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손이 많이 가는 신부인 저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어 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에서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예수님께 원하는 것은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요한 묵시 2, 3)는  이 말씀처럼  주님의 뜻을 실천 함에 있어서 지치는 일이 없이 언제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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