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마태 5, 43-48) - 2562

Author
신부님
Date
2022-06-13 06:45
Views
120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2562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마태 5, 43-4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 44-45)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파라오처럼 나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게 됩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삶의 목표입니다. 아버지의 완전함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아버지의 완전함을 닮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앙생활을 더욱치열하게 할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이 구원이 바로 하늘나라에 사는 것임을 압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 하늘나라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행복과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삶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구원의 동앗줄을 잡느냐 안잡느냐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앗줄을 잡는 구체적인 행위가 바로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조건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원수의 의미는 그냥 나와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대해서 잠언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잠언 25, 21)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이렇게 도와 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덧붙여서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조건입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궁극 목적은 그들도 원래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였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은 못할것이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그리고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사랑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할려고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상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세례를 통해서 우리를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갈라 2, 19-20).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계명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는 말씀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는 말씀처럼 결국 자비와 사랑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 사랑은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하는 조건인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적인 존재이기에 실망과 좌절을 하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생기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순간 순간 이러한 유혹에 쓰러집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회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기도만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기뿜과 감사를 주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기도는 우리의 한계를 하느님께서 넘게하시는 매직파워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하루,. 일상이 기도가 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완전함을 닮아가는 하루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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