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참질서의 회복.(마태  13, 10 - 17) - 2594

Author
신부님
Date
2022-07-19 19:47
Views
127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2594

2022년 7월 21일 목요일

참질서의 회복.(마태  13, 10 - 17)

“16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마태 13, 9)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인권부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낙태제의 합법화와 사형제도의 찬반 논란이 심해지고 내로남불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사랑과 용기 희망과 평화와 같은 생명의 언어들은 사라지고 미움과 증오와 폭력과 이기심과  원수 같은 죽음의 언어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샬아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루 하루의 일을 마치시고 ‘보시니 좋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좋았다’고 일반적으로 번역하는 희브리어 ‘토브’는 영어로 ‘good’ 혹온 ‘in order’이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24,7절에서는 ‘아름답다’라는 의미로 이사악의 아내에서 사용되어 졌습니다.

일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노동이 되고 피곤하게 된 것은 바로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난 뒤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인간에 의해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일은 원래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교만’에 의해서 왜곡된 것입니다.

부활은 바로 왜곡된 창조질서의 회복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회복이고 ‘질서’의 회복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 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파괴’가 ‘창조’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하늘나라와 복음을 선포하시고 난 뒤에  많은  군중들이 여러 동네에서 모여들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님과 교회를 통해서 땅에 씨를 뿌리듯이 선포되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자세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 9)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십니다. 이사야가 예언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데 이 소명이 바로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려옵니다.  구원의 메시지가 아닌 심판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예언자들이 받는 소명과는 너무나 다른 소명이기에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소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서 1장에서 5장까지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사야서 5장에서는 포도밭의 비유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큰 정성을 들였는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그러한 정성을 들였슴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는 들포도가 맺게 됩니다.  포도밭 주인의 실망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라고 하더라도 그 포도를 뿌리채 뽑아서 버렸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가 바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당신께서 이 포도밭에 대한 징벌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부르셔서 이 백성들이 보고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일이 없도록하라고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의 절정에는 바로 이러한 포기가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이러한 심판은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고 심판이 빠르면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빠를 수가 있기 때문에 이사야 예언자에게 이러한 소명을 주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 언제까지 제가 이 소명을 수행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그 포도밭이 황폐하여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될 때까지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새 싹이 돋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싹이 돋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 16)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심판을 할만큼은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은 필연적 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듣고 깨닫는 경우에는 그 비유들의 심오함과 의미들을 잘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을 닫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거나  자신의 이성으로 만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참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믿음의 토대 위에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우리 모두는 백배 천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로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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