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준비하는 시기(요한 7, 1-2. 10. 25-30) - 3158

Author
신부님
Date
2024-03-14 03:53
Views
81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58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준비하는 시기(요한 7, 1-2. 10. 25-30)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 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 28-29)

최근 들어 더욱 자주 하느님께서 참으로 부족한 저를 당신의 사제로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만큼 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고 있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제 스스로 당신의 도구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임을 깊이 깨닫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모태에서부터 불러 주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어진 신앙이었기에 간직할 수가 있었지 제가 신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다면  저는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유혹에 쉽게 쓰러지는 저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순 시기는 내가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를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점검해 보는 시기임과 동시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점검해 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교만과 이기심에 의해서 왜곡된 관계를 정상화하는 시기가 바로 사순 시기 입니다.

지혜서에 의하면, 이기심이 바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도 못하게 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세상의 뜻에 따라서 살도록 초대합니다. 세상의 추세에 따르라고 합니다. 지금 이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망한다고 유혹합니다. 죽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죽지 않고 사는 것을 택하면 영원히 죽는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십니다.

나를 죽이는 것이 바로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져야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면 그 십자가는 가볍고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이랍니다. 바로 주님 안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지는 십자가는 무거운 것도 가볍고 편안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착각이었슴을 깨닫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에서 조차도 하느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뜻이 우선함을 발견하면서 큰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실망은 나만의 실망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님 안에서 모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만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추세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해왔지만 사실은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회입니다. 거짓을 참이라고 말하는 사회입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 많은 실망을 합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낮과 밤에 하는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간구의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의 이면에는 하느님께 ‘이렇게 하시라’는 명령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담긴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보다도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한 14, 10)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겉만 보고 판단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주인이 하느님에서 자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우리 이지만 주인이 자신이 되고 부터는 세상적인 삶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무서워하면 세상이 두렵지가 않지만 세상을 무서워하기에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이 바로 하느님의 자리에 세상이 자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선 순위의 뒤바뀜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또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다 안다고 하는데 정작 사람들이 아는 것은 인간의 모습으로서 오신 예수님만 압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인간의 악이, 인간의 욕심이 내면을 보는 눈을 흐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겉이 아닌 내면을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갖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영원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보는 눈을 갖기를 원합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지혜 2, 21-22)는 지혜서의 말씀을 간직합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악이 나의 눈을 멀게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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