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내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지혜(마태 10, 24-33) - 2584

Author
신부님
Date
2022-07-07 19:51
Views
105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84

2022년 7월 9일 토요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지혜(마태 10, 24-33)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 28)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강할까 하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그 답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 보이는 그 수준에 머물게 되지만 보이는 것의 원천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를 이 땅에 있게하신 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분을 볼 수 있는 유잃한 길은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세상적인 일과 하느님의 일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이해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하고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은 믿음에서 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로 살다가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오로지 믿음을 잃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종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종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인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느님 앞에선 우리는 종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당신 앞에선 모든 존재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냥 제자이며 종이라는 관계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간들 사이에는 하느님 앞에서  ‘똑같음’의 관계가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자신을 높이고 지배하려 듭니다. 구별하려 합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은 ‘똑 같음’을 부정했습니다. 이러한 높고 낮음의 구분을 통해서 하느님을 보았기에 원래의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만든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통해서 인간을 보아야 함에도 인간을 통해서 하느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우선이되고 하느님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느님의 영역에는 들어오지 말아랴 한다는 말씀을 듣고서도 사탄의 유혹에 빠집니다. 예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이 이를 깨닫게 합니다.

“사람들이 집 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마태 10, 24)

여기서 ‘집 주인’은 예수님을 말하고  ‘집’은 교회를 말하며  ‘그 집 식들’은 제자들과 신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마귀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9장 34절의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는 말씀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마귀의 우두머리로 생각하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심하게 박해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박해를 이겨내면 우리는 바로 스승처럼 되고 주인처럼 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박해를 견디어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네 번째의 위로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을 둘러보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방해요소들이 있습니다. 외적 내적인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들을 이겨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에 그 길이 바른 길처럼 여겨집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것은 죄가 아닌것처럼 생각됩니다. 대세를 거스르기가 너무나 힘이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것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달콤함에 빠지기 보다는 겉은 형편없지만 내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선, 즉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달콤함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선은 순간은 감출수 있어도 최후의 심판 때가 되면 위선과 악의는 하느님 앞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는 박해를 받게될 것인데 이러한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박해를 하는 사람들은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 만이 사람의 영혼에 대한 권한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가장 작은 일까지도 모두 알고 계시고 우리들을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세심하게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유는  참새 조차도 기억하시며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를 박해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것이 바로 대세를 거스르는 일인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이러한 힘든 일을 이겨내면 예수님께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과 희생을 증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고해서 믿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그 믿음 속 에서 더욱 대담해져야 하고 용감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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