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 12, 1-8) - 2589

Author
신부님
Date
2022-07-13 20:08
Views
108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89

2022년 7월 15일 금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 12, 1-8)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 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 7)

오늘은 보나벤투라 성인의 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새로운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일까를 질문해 봅니다. 새로운 사람이란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코데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새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운 질서, 새로운 사고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새로움의 원천은 ‘원천으로 돌아감’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 하느님의 사랑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창조 되었던 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살펴봅니다.

어부였던 사람들이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모습을, 세관원이었던 레위가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요한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그 모습도 함께 봅니다. 이들은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을 놓고서 거룩함을 쫓아갑니다. 

‘거룩함’이란 하느님과 연관을 맺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과의 연관을 끊고서 나아가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선택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이 머뭇거림이 하느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를 잡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즉각적’이었습니다. ‘곧장’ 따라갔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포기로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난 뒤 혹은 준비를 하고’라는 이유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가장 큰 훼방꾼입니다.  새로움의 추구는 즉각적이고 전적인 투신을 의미합니다. 어려운 일이기에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인 당신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시랍니다.  안식일에 대한 모든 권한이 당신께 있슴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존재의 이유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선이고 인간이 우선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제도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이러한 제도나 규범이 오히려 인간을 도구화 시킨다면 그 제도는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인간을 위한 안식일인데 이 안식일이 인간을 안식일의 노예로 살아가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것인데 인간의 주인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제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내가 아닌 우리가 주인입니다. 제도 그 자체보다 인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안식일의 존재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함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모든 창조물은 인간의 관리하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인간이 죄를 범한 뒤에 하느님의 위치에 인간이 들어와 있고 인간의 위치에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주와 종이 뒤바뀐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면 되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필요한 것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서로 비교하게 합니다. 비교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유에 욕심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필요한 만큼’의 개념이 사라집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만큼 소유하고 활용하는 사람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와 ‘주와 종’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참으로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사랑의 실천입니다. 참 제물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랑을 실천할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내가 대하는 사람을 대하실까를 생각하면서 그분을 대하고자 다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러한 실천이 우리의 삶을 생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 두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상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우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고서  언제나 깨어서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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