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주님 안에서 뒤바뀌는 개념들(마태 5, 17-19) - 3150

Author
신부님
Date
2024-03-03 05:56
Views
69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50

2024년 3월 5일 수요일

주님 안에서 뒤바뀌는 개념들(마태 5, 17-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하느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을 합니다.  나의 생각이 옳으면 하느님께서도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실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마 전에 뼈저린 체험을 하고서 받아들였습니다. 어쩌면 간헐적으로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마침이라고 또 우리가 마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시작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폐기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얼마 전부터 총선을 앞두고  일은 하지 않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일은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권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남용했으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권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적인 특별한 지위에 걸 맞는 공적인 행위를 잘 할 수 있게 배려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특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지위’ 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지위에 있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공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할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특권은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잘 봉사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권을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민을 잘 섬기라고 준 특권을 자신들이 잘 섬김을 받기 위해서 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또한 이러한 지적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제로 살면서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법적인 특권은 아니지만 사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가끔 이러한 특권 때문에 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정확한 신원을 잊어 버리고  이러한 혜택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깨어 있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언제나 감사하며  겸손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이 저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열왕기 상 18, 20-39 에서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엘리야 예언자 사이에 누구의 신이 참 하느님이신가를 두고서 대결을 벌입니다.  바알의 예언자의 수는 사백오십명입니다. 하지만 옐리야는 혼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서 당신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세상에는 온갖 잡신이 많이 있습니다. 이 수 많은 잡신들이 바로 우상임을 입증해 보여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희브 11, 1) 는 말씀을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고 꿈꾸는 것들이 믿음이 없으면 어렴풋하게 보이고 확신이 없지만 믿음을 갖게 되면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들이 명확해 지고 확신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 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실체들인데  어떻게 증거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지 못했지만 본 것처럼 증거가 내 마음에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바로 희미한 것을 명확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마음 속에 실제로 존재하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에 이러한 체험이 없으시다면 왜 하고 이유를 물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똑 같은 것을 보면서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끼는 경우를 체험합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역시 다를 때를 체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어떤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느끼지 못합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할 당시에 성령이 충만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 편에 서계신 예수님이 보였다.’(사도 7, 54)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앉아계신 것이 아니고 서 계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을 상상하는데 서 계시다는 것이 생소하게 들립니다. 언제나 스테파노의 영혼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부를 때는 더욱 가까이 계셔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많은 위로가 됩니다. 이성으로 따지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이해하게 되고 위안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들의 근본 정신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근본은 없어지고 껍질만 남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시 본질을 회복시키러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사랑은 없고 껍데기만 있는 이 세상에 사랑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부활은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줍니다.  인간에게 죽음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보게합니다. 한계에서 영원으로 넘어감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넘어서는 우리의 삶이 바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고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를 지내면서   ‘주님께는  불가능함이 없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 15:7)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서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주님 안에서 언제나 사제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감사하며 겸손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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