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사건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부활 (마태 28,8-15) - 350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08
2025년 4월 21일 월요일
사건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부활 (마태 28,8-15)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 9-10)
엊그제 같았던 코로나 19 때문에 대면으로 하던 모임이 금지 되었던 시기를 되돌아 보면, 이번 사순시기와 부활을 준비하면서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 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봉헌하며 준비하는 성삼일 미사와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 봉사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수난과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봉사해 주신 모든 분들과 동시에 기도와 물적 도움으로 물심 양면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파괴와 건설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핵에너지가 같고 있는 극단적인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으로 사용하면 발전과 건설 생명을 주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미움과 증오로 사용하면 파괴와 죽음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과 미움은 건설과 파괴 죽음과 생명의 양 극단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와 두려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부활이 평화를 주는 것이지만 당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당신의 부활이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당시 첫날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땅이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빛이 생겨라” 하십니다. 오늘 주간 첫날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덤의 어둠으로부터 빛을 비추십니다. 죽음의 어둠을 이기시고 다시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새로운 질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천사들로부터 제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태 28, 7)라는 메시지를 전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제자들에게로 달려갑니다.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큰 기쁨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감정의 전형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평안하냐?”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께 다가가 엎드립니다. 그리고 절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두번 째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마태 28, 10) 하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인사로 건네시는 ‘평화’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신을 잃고 난 뒤에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가졌던 감정이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극도의 혼란이었습니다. 질서의 파괴였습니다. 바로 당신의 부활은 새로운 질서 즉 ‘평화’의 시작이며 ‘두려움’에서의 해방인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십자가 상에서 죽게하고 기고 만장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두려움과 혼란의 시작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아담과 이브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거짓에 거짓을 더합니다.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자신들을 몰아갑니다. 이러한 모습이 아래의 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마태 28, 12-14)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죽음과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부활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부활은 '죄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십자가 상의 죽음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사건으로 접근하는 부활이 아니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부활이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부활은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합니다. 우리 또한 부활하게 합니다.
부활 8일 축제 월요일을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체험하고 이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에게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나를 통해서 이웃에게 전달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Number | Title | Author | Date | Votes | Views |
2975 |
희망의 시작 - 광명정대(光明正大)한 삶(요한 17, 11-19) - 3546
신부님
|
2025.06.02
|
Votes 5
|
Views 992
|
신부님 | 2025.06.02 | 5 | 992 |
2974 |
희망의 시작 -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 17, 1-11) - 3545
신부님
|
2025.06.01
|
Votes 5
|
Views 1003
|
신부님 | 2025.06.01 | 5 | 1003 |
2973 |
희망의 시작 - 평화의 도구가 되는 삶(요한 16, 29-33) - 3544
신부님
|
2025.05.31
|
Votes 6
|
Views 1001
|
신부님 | 2025.05.31 | 6 | 1001 |
2972 |
희망의 시작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 1, 39-45) - 3543
신부님
|
2025.05.29
|
Votes 4
|
Views 909
|
신부님 | 2025.05.29 | 4 | 909 |
2971 |
희망의 시작 - 내가 만든 하느님을 믿는 삶(요한 16,20-23ㄱ) - 3542
신부님
|
2025.05.28
|
Votes 3
|
Views 1003
|
신부님 | 2025.05.28 | 3 | 1003 |
2970 |
희망의 시작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요한 12,24-26) - 3541
신부님
|
2025.05.27
|
Votes 4
|
Views 692
|
신부님 | 2025.05.27 | 4 | 692 |
2969 |
희망의 시작 -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신 하느님 (요한 16, 12-15) - 3540
신부님
|
2025.05.26
|
Votes 7
|
Views 768
|
신부님 | 2025.05.26 | 7 | 768 |
2968 |
희망의 시작 - 참 행복의 믿음 (요한 16, 5-11) - 3539
신부님
|
2025.05.25
|
Votes 4
|
Views 691
|
신부님 | 2025.05.25 | 4 | 691 |
2967 |
희망의 시작 -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요한 15, 26 - 16, 4) - 3538
신부님
|
2025.05.25
|
Votes 3
|
Views 574
|
신부님 | 2025.05.25 | 3 | 574 |
2966 |
희망의시작 - 주님에 대한 사랑의 우선성(요한 15, 18 - 21) - 3537
신부님
|
2025.05.22
|
Votes 5
|
Views 746
|
신부님 | 2025.05.22 | 5 | 7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