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마태 9, 14-15) - 3134

Author
신부님
Date
2024-02-14 22:05
Views
71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34

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마태 9, 14-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 15)

루르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갑자기 만들어진 순례 여정이었기에 이 여정의 겉으로 드러러난 목적에만 충실하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그랬지만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깊은 뜻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바로 40년 전에 저를 당신의 사람으로 불러 주셨던 분께서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는 저를 어머님의 발현지로 부르셔서 어머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깊이 체험하게 하시며 다시금 어머님을 통해서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알려 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이러한 어려움 와중에도 어머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던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금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면서 이번 여정을 준비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여정이었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이 여정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허락해 주셨슴을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여정을 마치면서 아침 일찍 봉헌한 미사에서 저는 참가한 여러분들께 저에게 하는 말을 강론의 형식으로 아래와 같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순례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시간적으로 혹은 육체적인 어려움으로 하지 못하시는 여러분들을 기억하면서 그분들에게 참 이웃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혜택을 많이 받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미사 중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이번 순례에 함께했던 여러분들의 일상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책임지기를 싫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곳에서는 덜 책임지는 쪽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과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지요. 이유는 악과 선은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즉, 양립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합니다. 두개를 다 갖고 싶어하는 욕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이유로 식당을 갈 때마다 메뉴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갖습니다. 이것 저것 다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삶의 매 순간 순간을 지내면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선택과 포기의 기준을 잘 정해야 합니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기 위해서 저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규율이나 계명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원래의 이러한 규율이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주의를 두다가 보면  인간적인 따뜻함이 결여된 차가운 이성의 논리가 자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바로 어정쩡한 태도가 아닌 단호한 태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삶에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마태 9, 13)’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는 열과 정성을 다해서 열심히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을 찾아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 것입니다.

이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남에게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상석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삶의 양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합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참 뜻이 드러나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어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절제와 극기의 생활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의 제자들도 극기와 단식의 생활에 익숙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세례자 요한이 일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요한 3, 29) 하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자신을 신랑친구로 묘사했었는데 이를 인용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혼인잔치와 같은 기쁜 곳에 와서 단식을 하는 것은 기쁜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더라도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하더라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단식을 하더라도 표시가 나지 않도록 화장을 하라고 하시는 그 가르침의 연장선 상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새 천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는 것과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로 드십니다. 이 두 비유는 표현만 다르지 실제의 의미는 같습니다.

‘헌 옷’은 당시의 바리사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했던 규정들이라면, ‘새 천’은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의 참된 의미는 예수님의 복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리사이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옛 생각과 삶의 양식을 고집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멀리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위로부터의 태어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변화되기를 두려워 하는가?’ 질문합니다. 나는 믿음과 삶을 분리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질문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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