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예 아니면  아니오(루카 11, 14 - 23) - 31 - 3151

Author
신부님
Date
2024-03-03 19:47
Views
65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51

2024년 3월 7일 목요일

예 아니면  아니오(루카 11, 14 -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11, 23)

시편인 1장은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시편의 저자는 구체적으로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삶.”(시편 1-2)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편에 서기위해서는 사탄을 향한 단호한 태도가 필요함을 강조하십니다.  사탄과 예수님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삶은 결국에는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이기에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응답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단락 전에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는 바로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바로 이 기도가 사탄을 향하여 단호한 태도를 갖게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과 사탄의 뜻을 식별하는 지혜를 갖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것을 청한다면 하느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더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제대로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항상 하느님께 청하고 매사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늘나라의 문을 두들기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더 잘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여기서 성령의 의미는 영적인 선물, 즉 영적인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서는  놀라워 하는데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 낸다.”하고 말했습니다.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은 열왕기 하권 1장 2절 “아하즈야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다쳤다. 그래서 그는 사자들을 보내며,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불에게 가서 내가 이 병에서 회복될 수 있는지 문의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에 나오는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불'에서 유래한다고 말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마귀 두목의 이름으로 베엘제불과 사탄을 같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는 사람들 안에는 벌써 마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가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 마귀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함하기에 참으로 좋은 전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고 논리적으로 모순임을 지적하시며 그들을 공박하시고 자신을 오히려 베엘제불보다 더 강한 존재로서 베엘제불과  대립하는 위치에서 하신 말씀이 바로 23절의 말씀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이 말씀은 마귀의 세력과 예수님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예수님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귀편도 아니다"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 아니면 “아니오”라는 대답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마귀의 권세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사탄에 협력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따름으로써 하느님나라의 백성을 모으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합력하지 않으면 하느님나라 백성을 흩어지게 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시편 1, 1-2) 거룩한 사순시기를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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