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마티아 사도의 축일에(요한 15,9-17 ) - 2530

Author
신부님
Date
2022-05-05 18:32
Views
63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30

2022년 5월 7일 토요일

마티아 사도의 축일에(요한 15,9-17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지금의 세상은 사랑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랑의 말은 많은데 사랑의 실천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먼저, 마티아 사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의하면 마티아 사도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웃의 사도직을 이어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의하면 당시에 사도가 되기위한 조건으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날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사도들과 함께 동행했던 사람 이어야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저자인 루카는 그를 사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자신을 사도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사랑의 상대는 ‘서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요한 복음 3장 16절의 말씀과 필립피서 2장에 6-8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 6-8)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활동의 핵심은 바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권위적인 사랑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랑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러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죽게하시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어떠한 사랑이어야 하는 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아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와 반대의 삶이 대세임을 보게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사랑합니다. 사랑도 자기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에 당연히 상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그 착각이 바로 사랑하는 관계를 깨어놓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 사랑의 출발점은  내가 상대가 되어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전서 13장 4절에서 7절에서 말씀하신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코전 13:4-7) 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서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우리가 될 거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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