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요한 1서1,1-4/ 요한 20,2-8) - 3820

Author
신부님
Date
2025-12-25 08:57
Views
35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20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요한 1서1,1-4/ 요한 20,2-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8)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축일을 지내시는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틀 전 우리는 화려한 불빛 아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구유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우리를 갑자기 차갑고 어두운 ‘무덤’ 앞으로 데려갑니다.

성탄 시기에 듣는 부활 복음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유가 하느님 사랑의 '탄생'이었다면, 오늘 요한이 마주하고 있는  빈 무덤은 그 사랑이 죽음을 이겼다는 '완성'의 선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0, 2-8)의 시작은 다급함 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향해 전력 질주합니다. 복음은 흥미로운 사실을 기록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여기서 ‘다른 제자’는 요한 자신을 가리킵니다. 왜 요한이 베드로보다 빨랐을까요? 단순히 젊었기 때문일까요? 영성가들은 이것을 ‘사랑의 속도’라고 부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빨리 반응합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고, 두려움보다 앞서 나갑니다.

우리 삶에도 갑작스러운 시련이나 상실이라는 ‘무덤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신앙은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않고  요한처럼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게 할것입니다.

무덤에 먼저 도착한 요한의 행동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는 무덤 안을 들여다보면서도 먼저 들어가지 않습니다. 뒤처져 오고 있는 원로 베드로를 기다려 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동반자의 영성’ 입니다.

우리 중에는 신앙의 열정이 뜨거워 먼저 달려 나가는 분들도 있고, 삶의 무게에 눌려 조금 천천히 걷는 분들도 있습니다. 먼저 도착한 요한이 베드로를 기다려 주었을 때, 비로소 교회는 ‘함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영성적 성취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형제의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무덤 문앞에서 기다려 줄 줄 아는 넉넉함과 배려의 마음 —그 기다림 속에 주님의 현존이 머뭅니다.

마침내 무덤에 들어간 요한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시신은 없었습니다. 오직 버려진 아마포와 개켜진 수건뿐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실패와 도난의 증거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8)

요한은 ‘없음’ 속에서 ‘있슴’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주님의 약속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희망의 시작’ 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성과나 축복이 있을 때만 하느님이 계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내 삶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아 공허한 마음이 드는 그 ‘빈 무덤’의 순간에 시작됩니다. 요한은 그 텅 빈 자리에서 주님의 현존을 봅니다. 우리도 인생의 빈 자리를 마주할 때, 그것을 허무가 아닌 주님이 일하시는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평생을 두고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로 기억했습니다. 그 사랑의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십자가 밑을 지킬 수 있었고, 빈 무덤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음을 확신하는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그 확신만 있다면, 우리 앞의 어떤 무덤도 더 이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역시 요한 처럼 옆에 있는 형제의 손을 잡고 함께 주님을 향해서  달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동시에 우리 삶의 비어 있는 공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 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빈 무덤이 더 이상 우리에게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부활이라는 찬란한 희망이 시작 되는 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성 요한 사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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