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똑 같은 사건의 상반된 의미(루카 5,1-11) - 330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05
2024년 9월5일 목요일
똑 같은 사건의 상반된 의미(루카 5,1-11)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 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루카 5, 4)
요한 북시록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끼리만 아는 상징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유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로마제국은 자신들의 왕을 신격화 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신으로 모시는 그리스도 인들을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박해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인들 사이에서는 자신들 만의 고유한 상징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믿은 사람들에게는 지혜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헤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복음의 내용과 요한복음 21장에서읽는 복음의 내용은 똑 같은 사건의 반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의 물고기와 3년후 똑 같은 사건에서의 물고기가 의미하는 바는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지혜, 세상의 어리석음이 하느님께는 지혜가 되는 비슷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고 난 뒤에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적어도 갈릴래아에서 평생 고기 만을 잡고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유는 갈릴래아에 사는 물고기는 한밤중엔 깊은 데로 몰렸다가 새벽이 되면 얕은 데로 거처를 옮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새벽이었습니다. 굳이 한 번 더 그물을 던지려면 얕은 데에 던지는 것이 타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한 번 더 깊은 데로 가 그물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응당 빈 그물로 올라와야 할 그 그물 속에 그물이 찢어질만큼의 많은 물고기가 잡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의미는 그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었습니다. 이유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이 잡힌 물고기를 보면서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동안 내내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이룰 기회와 방법만을 궁리하다가,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예수님이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자 그들은 미련 없이 예수님을 배신한 채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3년 후 요한 복음에서 일어난 사건은 장소도, 등장 인물도, 사건의 전개 과정도 모두 일치합니다. 똑같은 사건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들에게 두 번씩이나 반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아 보이는 이 두 사건의 의미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루카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보면서 자신들의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도망간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이 똑 같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발견하고 동시에 밤새워 고기를 잡느라고 허기와 피곤에 지친 자신들을 위해서 물가에서 아침을 준비해 놓으신 예수님의 헌신과 사랑의 모범을 보면서 이제 자신들도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깨달음의 삶이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의 삶과 연결됨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믿음의 삶을 살기 전과 후의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초창기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의 그 모습과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사랑의 메시지에 감동을 받아서 참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들의 모습과 같이, 이제 영원을 살아가는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Number | Title | Author | Date | Votes | Views |
2780 |
희망의 시작-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1, 47 - 54) - 3351
신부님
|
2024.10.15
|
Votes 4
|
Views 923
|
신부님 | 2024.10.15 | 4 | 923 |
2779 |
희망의 시작 - 부메랑이 되는 심판(루카 11,42-46) - 3350
신부님
|
2024.10.14
|
Votes 5
|
Views 714
|
신부님 | 2024.10.14 | 5 | 714 |
2778 |
희망의 시작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루카 11,37-41) - 3349
신부님
|
2024.10.13
|
Votes 3
|
Views 728
|
신부님 | 2024.10.13 | 3 | 728 |
2777 |
희망의 시작 - 율법과 자유(루카 11, 29-32) - 3348
신부님
|
2024.10.12
|
Votes 6
|
Views 793
|
신부님 | 2024.10.12 | 6 | 793 |
2776 |
희망의 시작 - 참 행복을 누리는 삶(루카 11,27-28) - 3347
신부님
|
2024.10.10
|
Votes 5
|
Views 630
|
신부님 | 2024.10.10 | 5 | 630 |
2775 |
희망의 시작 - 사탄의 특징과 성령의 특징(루카 11, 15 -26) - 3346
신부님
|
2024.10.09
|
Votes 3
|
Views 695
|
신부님 | 2024.10.09 | 3 | 695 |
2774 |
희망의 시작 - 믿음과 성령을 통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루카 11, 5-13) - 3345
신부님
|
2024.10.08
|
Votes 4
|
Views 660
|
신부님 | 2024.10.08 | 4 | 660 |
2773 |
희망의 시작 - 항구함과 하나됨(루카 11, 1-4) - 3334
신부님
|
2024.10.07
|
Votes 5
|
Views 811
|
신부님 | 2024.10.07 | 5 | 811 |
2772 |
희망의 시작 - 더 좋은 몫을 택하는 삶(루카 10, 38-42) - 3333
신부님
|
2024.10.06
|
Votes 6
|
Views 767
|
신부님 | 2024.10.06 | 6 | 767 |
2771 |
희망의 시작 -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루카 10, 25 - 37) - 3332
신부님
|
2024.10.05
|
Votes 5
|
Views 808
|
신부님 | 2024.10.05 | 5 | 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