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나약한 지식인의 이기적인 모습(요한 3, 1-8) - 351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14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나약한 지식인의 이기적인 모습(요한 3, 1-8)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 2)
생각을 많이 하면 인간이 일을 하고 기도를 많이 하면 하느님께서 일을 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의 의미는 인간의 유한한 지식을 너무 절대화 시키지 말것, 즉 이러한 유한한 지식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완전성에 의탁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리사이로서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고 유대인의 최고의회의 한 멤버로서 사회적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시체를 관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 2)
니코데모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그는 왜 ‘저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신 복수 일인칭 ‘저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믿는다’는 말 대신에 ‘알고 있다’라는 말을 쓸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또하나의 질문은 그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찾아 옵니다. 그런데 이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낮에 예수님을 찾아오기에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사람들의 눈도 피할 수 있고 자신의 이성적인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밤을 선택합니다. 나약한 지식인의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그가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스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십니까?” 믿음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성으로 바라보니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분이 또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새로운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사도 9, 2.) 바오로는 이런 사람들을 찾기만 하면 남 녀 불문하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다마스쿠스로 갑니다. 거의 그곳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며 그의 둘레를 비추고 그는 쓰러집니다. 그 순간 쓰러져서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때 그가 하는 질문이 바로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사도 9, 2-5) 그 때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결국 바오로 사도는 하나니아스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니코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요한 3, 5)을 말합니다. 물을 말씀으로 대치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자신의 궁금증도 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인호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졌으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도록 파견되었습니다.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이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거창한 설교나 영웅적인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는 마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실천들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행위입니다.
초대 교회 신앙 공동체가 기도하며 성령의 힘을 간구했듯이, 우리도 기도하며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청해야 합니다. 우리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시어 우리를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들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부활 제2주간 월요일을 지내며, 우리 안에 살아 숨 쉬시는 성령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기쁘게 살아가고,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담대히 증거하는 복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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