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세상의 빛이 되는 삶(요한 3,16-21) - 3516
Author
신부님
Date
2025-04-28 07:1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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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16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세상의 빛이 되는 삶(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
오늘 복음과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 시기의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놀라운 활동과 이에 대한 세상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됩니다. 독서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을 전하다 박해받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증언에 나서는 사도들의 이야기가, 복음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 그리고 빛과 어둠에 대한 인간의 선택에 관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은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경 구절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을 찌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순히 좋게 여기는 감정을 넘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급진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선물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빛'입니다. 생명을 주고, 길을 밝히고, 진리를 드러내는 빛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바로 이어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심판은 이것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실이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여기서 '악한 행실'은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관계를 끊고, 진실을 외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모든 경향을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 숨기고 싶은 부분, 또는 이기적인 욕망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차라리 어둠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어둠을 사랑하는 마음', 즉 하느님의 빛을 거부하는 경향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서 우리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즉 빛의 승리를 선포하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심과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빛은 그들의 권위, 그들의 기득권, 어쩌면 그들 안의 숨겨진 '어둠'을 드러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어 '빛'을 가두고 침묵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화려한 영상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혼란과 불안, 그리고 고독이라는 '어둠'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패가 드러날까 두려워 가면을 쓰고 숨기도 합니다.
세상은 때로 진실보다 거짓을,, 나눔보다 소유를, 함께함 보다 경쟁을 부추기며 우리를 '어둠'으로 유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빛 안에서 살아가려 할 때, 세상의 어둠은 우리를 불편해하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박해하려 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에서도 우리는 이 빛과 어둠의 역동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평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가장 필요한 곳,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즉 세상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려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황님의 행보와 메시지는 세상의 환영만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틀을 흔들고,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쇄신을 외치실 때, 교황님 또한 많은 반대와 비난, 심지어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겪었던 어려움의 현대판 예시와 같았습니다. 세상의 '어둠'은 교황님이 비추려 했던 '빛'을 불편해했고, 그 빛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풀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전에 가서 백성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일러라."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두려 했던 바로 그 자리, 세상의 눈과 권위가 집중된 성전으로 다시 나아가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이라는 '빛'을 다시 선포합니다. 그들은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실(증언)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기 위해 기꺼이 빛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이라는 빛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아들인 '빛의 자녀'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느님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으며, 그 빛은 우리 안에서 타오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빛의 자녀는 어둠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살아내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저항에 부딪히고 어려움을 겪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도들을 감옥에서 풀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당신의 은총과 성령을 통해 '어둠의 감옥'에서 벗어나 담대하게 빛 가운데 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진실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바로 '빛의 행실'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언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빛을 선택하고, 그 빛 가운데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도록 용기를 내어 살아갑시다.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 영원한 빛 가운데 드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세상의 빛이 되는 삶(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
오늘 복음과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 시기의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놀라운 활동과 이에 대한 세상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됩니다. 독서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을 전하다 박해받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증언에 나서는 사도들의 이야기가, 복음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 그리고 빛과 어둠에 대한 인간의 선택에 관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은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경 구절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을 찌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순히 좋게 여기는 감정을 넘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급진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선물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빛'입니다. 생명을 주고, 길을 밝히고, 진리를 드러내는 빛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바로 이어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심판은 이것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실이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여기서 '악한 행실'은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관계를 끊고, 진실을 외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모든 경향을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 숨기고 싶은 부분, 또는 이기적인 욕망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차라리 어둠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어둠을 사랑하는 마음', 즉 하느님의 빛을 거부하는 경향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서 우리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즉 빛의 승리를 선포하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심과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빛은 그들의 권위, 그들의 기득권, 어쩌면 그들 안의 숨겨진 '어둠'을 드러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어 '빛'을 가두고 침묵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화려한 영상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혼란과 불안, 그리고 고독이라는 '어둠'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패가 드러날까 두려워 가면을 쓰고 숨기도 합니다.
세상은 때로 진실보다 거짓을,, 나눔보다 소유를, 함께함 보다 경쟁을 부추기며 우리를 '어둠'으로 유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빛 안에서 살아가려 할 때, 세상의 어둠은 우리를 불편해하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박해하려 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에서도 우리는 이 빛과 어둠의 역동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평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가장 필요한 곳,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즉 세상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려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황님의 행보와 메시지는 세상의 환영만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틀을 흔들고,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쇄신을 외치실 때, 교황님 또한 많은 반대와 비난, 심지어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겪었던 어려움의 현대판 예시와 같았습니다. 세상의 '어둠'은 교황님이 비추려 했던 '빛'을 불편해했고, 그 빛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풀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전에 가서 백성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일러라."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두려 했던 바로 그 자리, 세상의 눈과 권위가 집중된 성전으로 다시 나아가 '생명의 말씀', 즉 예수님이라는 '빛'을 다시 선포합니다. 그들은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실(증언)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기 위해 기꺼이 빛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이라는 빛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아들인 '빛의 자녀'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느님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으며, 그 빛은 우리 안에서 타오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빛의 자녀는 어둠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살아내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저항에 부딪히고 어려움을 겪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도들을 감옥에서 풀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당신의 은총과 성령을 통해 '어둠의 감옥'에서 벗어나 담대하게 빛 가운데 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진실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바로 '빛의 행실'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언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빛을 선택하고, 그 빛 가운데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도록 용기를 내어 살아갑시다.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 영원한 빛 가운데 드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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