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루카 8,19-21) - 3740

Author
신부님
Date
2025-09-21 16:54
Views
46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740

2025년 9월 23일 화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루카 8,19-21)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루카 8,21)

“화목지본(和睦之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의 화목이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이 평화로울 때 덕이 자라고, 그 덕이 세상으로 흘러가 평화를 이룬다는 지혜입니다.

탈무드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부모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집안의 운명을 바꾼다.” 가정은 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과 행동 속에서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이 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비오 신부님께서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사셨던 분으로 알려진 분이십니다.  신부님께서는 1918년부터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신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받으셨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루 하루의 일을 마치시고 ‘보시니 좋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좋았다’고 일반적으로 번역하는 희브리어 ‘토브’는 영어로 ‘good’ 혹온 ‘in order’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은 말씀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따라서 ‘좋았다’는 것은 말씀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들이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고 질서가 잡혀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 전의 일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노동이 되고 피곤하게 된 것은 바로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난 뒤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인간에 의해서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일은 원래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교만’에 의해서 왜곡된 것입니다.

회개가 왜곡된 창조질서에서 정상적인 창조질서에 대한 돌아 감의 다짐이라면, 부활은 바로 왜곡된 창조질서의 회복을 말합니다.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회복이고 ‘질서’의 회복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 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파괴’가 ‘창조’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에 이렇게 도전하십니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아 왔을 때 당신께서는 군중에 둘러싸여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 20-21)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라고 육적인 부모와 형제들에게  사랑이 없으셨겠습니다. 당연히 우리보다 더욱 깊고 넓은 사랑을 갖고 계셨고 이를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실천 방법이 달랐을 뿐입니다.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사랑으로 그 사랑을 실천한다면 예수님은 더 넓고 깊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고려해서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심을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구절이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이 ‘듣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봅니다. 왜 예수님께서 ‘들음’을 강조하실까?

잘 듣기 위해서 우리는 들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실행한다’는 것은 들음과 실천은 떨어져 가는 분리의 언어가 아닌 함께가는 단어인 것입니다. 들음은 실천으로 완성됨을 의미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모와 형제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들음과 실행’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형제요 부모임은 달리 표현하면  형제와 부모를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만이 나의 부모와 형제도 참으로 사랑할 수 있슴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삶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육적인 인간관계는 사라지고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인간관계 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에는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이고 또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냐를 알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로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랑에는 육적인 경계도 없었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의 자녀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참행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감사하며  당신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 행복의 삶을 살게 하시고  오늘 성 비오 신부님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도 말씀 안에서 살고, 성체와 고해성사 안에서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소서. 아멘

Total 3,143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3093
희마의 시작 - 참 부유함의 삶(루카 12, 13-21) - 3763
신부님 | 2025.10.17 | Votes 5 | Views 491
신부님 2025.10.17 5 491
3092
희망의 시작 - 루카 복음사가 축일에 (루카. 10,1-9) - 3762
신부님 | 2025.10.16 | Votes 8 | Views 482
신부님 2025.10.16 8 482
3091
희망의 시작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루카 12,1-7) - 3761
신부님 | 2025.10.15 | Votes 8 | Views 479
신부님 2025.10.15 8 479
3090
희망의 시작 - 사랑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삶 (루카 11, 47 - 54) - 3760
신부님 | 2025.10.14 | Votes 6 | Views 485
신부님 2025.10.14 6 485
3089
희망의시작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루카11, 42-46) - 3759
신부님 | 2025.10.12 | Votes 8 | Views 421
신부님 2025.10.12 8 421
3088
희망의 시작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의 정결(루카11,37-41) - 3758
신부님 | 2025.10.10 | Votes 8 | Views 464
신부님 2025.10.10 8 464
3087
희망의 시작 - 새로운 표징이 아닌 새로운 마음(루카 11,29-32) - 3757
신부님 | 2025.10.09 | Votes 6 | Views 485
신부님 2025.10.09 6 485
3086
희망의 시작 - 정의를 회복하고 구원을 완성하는 사건(루카 11,27-28) - 3756
신부님 | 2025.10.08 | Votes 6 | Views 408
신부님 2025.10.08 6 408
3085
희망의 시작 - 회개의 나팔과 하느님의 손가락(루카 11,15-26) - 3755
신부님 | 2025.10.08 | Votes 6 | Views 441
신부님 2025.10.08 6 441
3084
희망의 시작 - 우리를 변화시키는 기도(루카 11,5-13) - 3754
신부님 | 2025.10.06 | Votes 7 | Views 464
신부님 2025.10.06 7 464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