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아름다운 퇴장의 전형 (요한 1서 5,14-21/요한 3,22-30) - 3832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832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아름다운 퇴장의 전형 (요한 1서 5,14-21/요한 3,22-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30)
사람의 삶에는 ‘등장’만큼이나 ‘퇴장’이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우리가 등장에는 공을 들이면서도, 퇴장에는 서툴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리를 내려놓을 때, 박수 대신 미련이 남을 때, 내 이름이 뒤로 밀릴 때, 마음은 쉽게 툭 부러집니다. 그런데 신앙은 때때로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퇴장을 선택하겠느냐?”
‘아름다운 퇴장’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진실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용기입니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비틀지 않고, 내 몫을 챙기기 위해 공동체를 흩트리지 않는 절제입니다. 링컨의 말로 전해지는 문장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역경은 견디지만, 권력을 시험하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 보라.” 권력과 인정이 주어질 때 드러나는 것이 인간이라면, 반대로 그것을 내려놓을 때 드러나는 것은 ‘영혼의 결’입니다. 그리고 그 결이 고운 사람의 퇴장은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습니다. 누군가의 길을 넓혀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삶의 위기와 변화에 직면했을 때 어떠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개인적인 겸양을 넘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참 겸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가장 익숙한 것은 무언가를 청하는 ‘청원 기도’입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나,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조건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5,14)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는 기도의 열쇠는 바로 “그분의 뜻”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욕심에 맞는 응답을 기대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지점에서 우리의 모범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하며(요한 3,28),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찾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한 편의 ‘아름다운 퇴장’입니다. 그는 중심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심을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자기 영향력이 줄어드는 순간에도, 그는 불평하지 않고 기뻐합니다. “신랑의 소리를 듣고 기뻐한다”(요한 3,29)는 말은, 누군가의 빛을 시기하지 않는 마음, 하느님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아차리는 영혼의 성숙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불안정은 어쩌면 우리가 공동체의 선(善)보다 각자의 이익과 욕심을 우선시하며 겸손의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일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진정 누가 주인인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주인이신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 했을 때 불행이 시작되었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자리에서 자신을 주인으로 삼으려 할 때 삶의 방향은 어긋나고 어둠이 찾아옵니다. 세례자 요한이 신랑의 친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기쁘게 받아들인 것처럼(요한 3,29), 우리도 하느님께서 우리 삶과 공동체의 주인임을 고백할 때 비로소 참된 희망과 치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겸손은 ‘작아지는 기술’이 아니라 ‘주인을 바꾸는 결단’입니다. 내 욕심이 주인이면 세상은 늘 불만의 무대가 되고, 하느님이 주인이시면 같은 현실도 회개의 자리, 사랑의 자리로 바뀝니다. 세례자 요한이 보여 준 것은, 자기 축소가 아니라 하느님 확대입니다. 내가 줄어드는 만큼, 은총이 들어올 자리가 생깁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세상을 보시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참된 겸손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결단입니다.
이 결단은 성모님의 고백인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와 맥을 같이 합니다. 세례자 요한과 성모님은 공통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심으로써 인류 구원의 신비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퇴장’은 결국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더 보이게 되는 것. 내 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더 또렷해지는 것. 내 이름이 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이 더 찬미받는 것.
우리의 기도가 주님을 높이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평생 가슴에 새겨야 할 신앙의 공식입니다.
오늘 하루, 나 자신의 목소리는 조금 낮추고 내 안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내가 작아질 때 비로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커지시며, 그때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느꼈던 그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요한 1서 5,21) 내가 주인 되려는 ‘나’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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