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요한 8, 51-59) - 2505

Author
신부님
Date
2022-04-05 22:36
Views
108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05

2022년 4월 7일 목요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요한 8, 51-59)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요한 8, 54)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비움과 채움의 차이, 겸손과 교만의 차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과 하느님이 삶의 주인이 되는 삶 등등의  차이처럼  눈을 뜨고 귀를 열과 보고 들으면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잘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일과 보이는 세상의 일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믿음은 머리에 이론으로 남겨두고 유혹의 손길에 몸을 내 맡깁니다.  믿음 따로 삶 따로의 삶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의 질문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일려고 하는 사람과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즉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기 위해서 상대를 누르는 사람과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올리는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서 드러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통해서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시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같은 에덴 동산에서 살던 인간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선택은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주셨지만 우리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자유에 의한 선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하느님을 떠남으로서 체험하게 됩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람과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람과 롯은 부자였습니다. 서로가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서 함께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아브람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롯 사이에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이 조카 롯을 불러서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 13, 8-9) 하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제안을 아브람은 롯에게 합니다.  자신과 롯 사이에 참된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희생해야 함을 아브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얻는 삶의 전형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내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절대로 평화를, 화목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 받기를 원하는 아브람은 크게 양보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봅니다.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습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자신의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소유의 삶에 눈이 먼 롯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소유보다는 존재를 택합니다. 소유에는 한 발 물러서고 하느님께는 한 발 앞서가는 모습입니다.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과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대조적인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롯의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선택한 땅에서 피신해 나와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두고온 재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부인은 뒤를 돌아봄으로서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겠다는 사람의 마지막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으로부터 영광 받기를 원하는 아브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하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게 됩니다. 큰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요한 8, 54) 고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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