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 만을 신뢰하는 삶(요한 10, 31-42) - 2506

Author
신부님
Date
2022-04-06 22:02
Views
114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06

2022년 4월 8일 금요일

하느님 만을 신뢰하는 삶(요한 10, 31-42)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요한 10, 32)

죄는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다’는 말은 사탄의 일방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측에서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는 사탄과 우리의 합작품입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로 응답하기 보다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으로 응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을 배신으로 갚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름대로 주님께 의탁하고 살고자 노력하면서도 급한 상황이 되면 세상적인 논리에 기대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크게 오해를 합니다. 이 믿음에는 당연히 우리의 삶의 변화가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삶의 변화는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분들의 우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말로서만 내가 너의 부모인데 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당연이 이 사람들이 정말 나의 부모일까 하고 의심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참으로 많은 사랑을 보여 주셨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우리의 믿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응답은 사랑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배신으로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이해 받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것을 보고도 각기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내용을 듣고도 각기 다르게 듣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세상적인 이해관계를 하느님보다 우선시하며 살아갑니다. 또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합니다.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말이 달라져야 하고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의 입맛에 맞는 처신을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해와 상충되는 상황이 전개되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누가 누구를 판단하겠습니까?.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래서 ‘너나 잘해’라는 말이 유행하는지도 모릅니다. 유행하는 말은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처음 신부가 될 때 다짐했던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 그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든 신자들에게 사랑받는 신부가 되기를 원했었는데 하지만 사랑받는 신부가 아닌 사랑하는 신부가 되기를 원했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신부가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부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자들을 사랑하는 신부가 되기위해서 노력하고자 다짐합니다.

신부는 인기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하는 질문의 답을 사람들로부터 들을려고 하면 안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참으로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가에 대한 질문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답을 찾으면 아픈 것도 하느님으로부터 답을 찾으면 아픔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신부는 신부의 관점에서 신자들을 보고 신자들은 신자들의 관점에서 신부를 봅니다. 겉으로 자신에게 친절하고 신뢰하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을 함을 압니다. 인간의 이해를 받고 인간의 인기에 연연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받는 비판이나 오해를 두려워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사는 존재가 신부의 삶임을, 그러기에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세상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게 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참 행복이 어디에 있나를 찾아주는 친구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 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 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 41,10) 는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얼마남지 않은 사순시기를  주님 안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즐기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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