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나의 눈의 들보를 빼내는 삶 (루카 6, 39-42) - 2329

Author
신부님
Date
2021-09-08 23:24
Views
92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29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나의 눈의 들보를 빼내는 삶 (루카 6, 39-42)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 42)

‘보이는 대로 보는 것’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의 차이는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엄청난 차이가 있슴을 알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만을 보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다 보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과 연관지어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마다 남을 보기보다 나를 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접하게 될 때마다 아직도 남을 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러한 버릇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사람에게  자신을 먼저 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자신은 이해받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는데는 인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심판하지마라”(루카 6, 37) 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는 권한은 하느님께 귀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6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나도 심판받을 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오 6장 12절 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용서받을 수 없슴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심판하는 그대로 우리도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쉬운일이지만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 간다는 것은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제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더 어려운 일은 사제답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숱한 유혹에 쓰러진 것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1세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칼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아무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슴은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무엘 하 16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도망을 다닐 때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인 시므이가 다윗에게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사무엘 하 16, 7) 하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를 두고서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사무 하 16, 9) 하면서 다윗에게 그를 죽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말립니다. 이 때 다윗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사무 하 16, 11-12)

시므이의 저주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보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다시금 고백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내가 상황이 좋을 때는 나의 사람이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패한 나를 두고서 저주를 퍼붓는 똑 같은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배신할 때 그들 단죄하기 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볼 줄 알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러한 체험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더욱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었으면 그리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는 습관을 갖는 은총을 청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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