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인(마태 9,1-8) - 2576

Author
신부님
Date
2022-06-29 00:10
Views
106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76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인(마태 9,1-8)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 3)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은 하느님 때문에 자신을 내어 놓는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세상은 이기적인 소유를 위해서 분열과 대립, 분쟁과 긴장이 팽배한 세상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같은 생명과 축복의 말은 낯선 단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유한한 존재이기에 혼자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서는 우리 인간은 서로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 왔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나의 노력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됨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 가를 확인하시고자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어하시나 봅니다. 이 확인은 당신을 위한 확인이 아닌 우리를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어느 순간에 자신의 약속을 잊기도 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당신께 믿음과 순명을 고백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그의 나약함을 아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부족함을 보여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바로 내가 하느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이란 나의 믿음 때문에 이웃이 구원 받는 삶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외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번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사악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욱 귀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하느님을 위한 번제물로 자신의 외아들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 바침의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 이사악을 죽일려고 하는 아브라함을 말립니다. 이미 하느님께서 제물을 준비해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고 말합니다. ‘야훼 이레’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제야’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는 조금은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인은 우리에 대한 축복으로 전달됩니다. 그 복의 내용은 창세기 12장의 축복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후손의 번성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유에 익숙한 인간에게 이 소유를 넘어서 나눔의 실천까지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주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동료들을 통해서 축복을 받는 한 중풍병자의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는 중풍병자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평상에 뉘워서 예수님께로 오게 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의 아픔을 보고 그의 아픔에 마음을 연 사람들의 사랑이 저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이 복음서의 앞부분에서는 당신께 자비를 청하러온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배를 타고 당신이 사시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동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당사자의 믿음이 아닌 이웃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의 믿음의 삶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한 우리의 기도와 사랑 역시 중요함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이웃에게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를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이웃과 사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도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께 귀속되어 있슴을 아는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선포하시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마음을 보시고 이들이 보는 앞에서 구약에서는 메시아를 의미하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시면서  당신이 바로 메시아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이일을 보고서 군중들은 두려워하며, 사람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의 이웃이 구원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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