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 (마르 1, 7 - 11) - 3099

Author
신부님
Date
2024-01-04 17:35
Views
78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099

2024년 1월 6일 토요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 (마르 1, 7 - 1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 11)

“기다림은 강렬한 희망의 소산” 이라고 정의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고 오래 전에 기다림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내렸던 이 정의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기다림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 희망이 어떤 희망인가에 따라서 기다림의 의미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기다림에는 그분을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세례자 요한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과 순명의 영성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요체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왔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하는 그의 삶의 핵심은 순명과 겸손의 삶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7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르1:7-8)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차이는 물의 세례와 성령세례 만큼이나 현격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물의 세례는 회개를 하고나서 죄를 씻어내기 위한 세례일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주시는 세례는 죄와 벌을 모두 사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성령세례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마르코 복음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오 복음 3, 11과 루카 3, 16에는 ‘불’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의 의미는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에게서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마태오 복음 3장 14절에서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자기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께 세례를 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 15)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행하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죄인들과 하나되기를 원하신 뜻의 구체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함께함’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가가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메시아가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영광스러운 정치적 승리자로서 오는 것이 아님을 공포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행한 것은 금방 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서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지 이해가 되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에 따르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예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이심과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하느님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사고와 논리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 할 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내 생각과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기꺼이 죽일 줄 아는 것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들을 준비하면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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