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일상에서 대면하는 기적 (마태 12,38-42) - 2284

Author
Stella
Date
2021-07-27 22:32
Views
40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284

2021년 7월 19일 월요일

일상에서 대면하는 기적(마태 12, 38-42)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 39)

제가 많이 사용한는 말입니다. “기적이 믿임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간다.” 하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기적입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이 바로 기적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앞에 서면 부족하고 작은 존재입니다. 창조물이 창조주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창조물인 우리가 자신의 참 모습을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우리가 만든 세상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습에 일조한 나를 보고 슬퍼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믿음을 가질려고 하지말고 믿음으로서 기적을 만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앞 부분에서 사람들이 마귀가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십니다. 말을 못하던 사람이 말을하게 되고 보게도 됩니다. 이 광경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신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 기적이 사탄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폄하 합니다(마태 12, 22-24).

이어서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행동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고, 예수님의 기적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이 세대는 악하고 절개가 없는 세대' 라고 한탄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19-20) 하고 말합니다.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나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가 주인인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서는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고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요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일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준 것으로 해석됩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고, 그가 니네베에 가서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을 선포한 것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상징하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함으로써 심판을 피하게 된 일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닫힌 마음은 이 사건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참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다윗과 니코데모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있었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모습, 남의 티는 매의 눈으로 보면서 자신의 들보에 대해서는 소경의 눈을 가진 바로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함이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남방 여왕’의 이야기는 ‘잘 들어야 함’을 열왕기 상권 10장 1절에 등장하는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솔로몬을 시험해 보려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왕은 예수님의 복음과 비교하면 별것도 아닌 지혜를 들으려고 그렇게 먼 곳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서 왔다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서 감탄을 하였었는데 자신들 앞에 솔로몬 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닫힌 눈과 귀를 갖고 있는 유대인들을 두고서 그 여왕마저도 유대인들에게 죄가 있다고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인 요나의 설교만 듣고서도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듣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예언자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증적으로 확인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와 동떨어진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나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서 당연히 나도 포함 됨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믿음으로 일상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하루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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