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등잔 밑이 어두운 인간(루카 11, 29-32) - 2833

Author
신부님
Date
2023-02-27 18:46
Views
94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833

2023년 3월 1일 수요일.

등잔 밑이 어두운 인간(루카 11, 29-32)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 32))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우리 인간이 원래 갖고 있던 일치와 하나됨의 본성을 분열과 갈라침의 본성으로 바꾸었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원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하기 때문에  이 땅에 분열과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봉헌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추세에 역행하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는 바로 기도에서 옵니다.

언젠가부터 생각을 많이 하면 인간이 일하지만 기도를 하면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힘은 기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 27-2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복되신 분이시라고 이야기 하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말에 성모님께서 행복하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지만 성모님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분 중의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행복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성모님의 행복의 배경에는 믿음과 순명이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나의 삶의 목적이고 주인이 되는 삶이 바로  참 행복의 조건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항구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중도에 포기 하고픈 수 많은 이유들이 작용을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산 덕분일 것입니다.  이러한 항구함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같은 공간에서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산 결과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예수남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말을 못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본 군중이 놀라워 합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행하신 후에 사람들과 논쟁이 벌어진 일 때문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었습니다.

이 군중 은 예수님을 믿고 모여든 사람들이 아니라 앞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온 사람들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행동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고, 예수님의 기적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향해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라고 한탄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행동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고, 예수님의 기적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이 세대는 악하고 절개가 없는 세대' 라고 한탄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19-20) 하고 말합니다.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나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가 주인인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서는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일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준 것으로 해석됩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고, 그가 니네베에 가서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을 선포한 것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상징하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함으로써 심판을 피하게 된 일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닫힌 마음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참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다윗과 니코데모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있었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모습, 남의 티는 매의 눈으로 보면서 자신의 들보에 대해서는 소경의 눈을 가진 바로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함이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남방 여왕’의  이야기는 ‘잘 들어야 함’을 열왕기 상권 10장 1절에 등장하는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솔로몬을 시험해 보려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왕은 예수님의 복음과 비교하면 별것도 아닌 지혜를 들으려고 그렇게 먼 곳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서 왔다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서 감탄을 하였었는데  자신들 앞에 솔로몬 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닫힌 눈과 귀를 갖고 있는  유대인들을 두고서 그 여왕마저도 유대인들에게 죄가 있다고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인 요나의 설교만 듣고서도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듣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예언자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증적으로 확인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사순시기를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우리가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과 동반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있게 합니다.  요나 보다 더 큰 사람이 여기 있슴에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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