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낙엽위에  탄생하는  ‘예’ (이사 7,10-14 / 루카 1,26-38) - 3815

Author
신부님
Date
2025-12-18 12:00
Views
54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3815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낙엽위에  탄생하는  ‘예’ (이사 7,10-14 / 루카 1,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낙엽은 떨어질  때 요란하지 않습니다.
바람 한 번에 손을 놓고,
땅 위에 내려앉아 길의 색을 바꿉니다.

대림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우리 마음도 낙엽처럼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기다림은 달력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오실 자리를 내 안에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1,26-38)은 우리 본당 홈페이지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에서도 여러 해 반복해 묵상해 온 본문입니다. 어떤 해에는 “말씀에 순명하는 삶”을, 또 다른 해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삶”, 그리고 “성모님의 믿음”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결국 한 문장에 담아 봅니다. 희망은 감정이 아니라, ‘예’라고 응답하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 ‘예’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1독서(이사 7,10-14)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이사야는 아하즈 임금에게 하느님께 징표를 청하라고 말합니다(이사 7,11). 그런데 아하즈는 “청하지 않겠습니다.”(이사 7,12)라며 물러섭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께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욕심의 포장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계산을 비켜 가시며, 당신이 직접 징표를 선포하십니다.

“보라,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임마누엘은 문제를 지워버리는 주문이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약속이 “말”에서 “육”으로 바뀌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인사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마리아는 몹시 놀라고,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합니다(루카 1,29).

이 장면이 저는 참 마음에 남습니다. 믿음은 종종 “즉각적 확신”으로만 오해되지만, 마리아의 믿음은 먼저 깊은 내적 침묵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를 자리는 소음 속의 흥분이 아니라, 생각하고 되새기는 고요 속에 생깁니다.

마리아는 묻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이 질문은 거절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을 배우려는 질문입니다. 천사는 답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하느님의 일은 인간이 ‘관리’해서 만들어 내는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숨결로 ‘잉태’되는 신비입니다.

마침내 낙엽이 떨어지듯, 한 말씀이 다가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아하즈의 입술은 “징표를 청하지 않겠다”고 닫혔지만, 마리아의 마음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하고 열립니다.

대림은 결국 이 선택 앞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내가 움켜쥔 확실함을 더 붙잡을 것인가, 하느님께 내 삶의 문을 열 것인가.

오늘 아침, 제 안의 낙엽을 한 장씩  떠올려 봅니다. 조급함, 통제하려는 마음, 체면, 불안, 미뤄 둔 화해, 기도 없는 분주함… 등등,  지금 성탄을 기다리는 시기는 이러한 인간적인 나약함의 모습들을 하나씩 내려 놓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내려 놓는 그 자리에 기다림이 성취되는 성탄으로 “예“라는 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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