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 - 2239

Author
신부님
Date
2021-05-25 23:26
Views
64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239

2021년 5월 28일 목요일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르 10, 51)

 

배려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의 양식입니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한 수고와 헌신과 자기 버림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 자기 우선의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타인을 위한 배려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중심, 자기 우선의 이기적인 삶에서 이미 탈피하였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기쁨이 수반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사람으로 인해 배려받는 사람이 기쁨을 얻게 되고, 배려 받는 사람의 기쁨이 결과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의 기쁨으로 되돌아오는 까닭입니다.

열왕기 상권 3장을 보면, 솔로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이 주님을 사랑하여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갑니다. 그곳에서 솔로몬의 꿈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솔로몬이 자신은 어려서 많은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면서 주님의 종인 자신에게 하느님께 듣는 마음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 이유는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악을 분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이 고백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겸손 함입니다. 동시에 주님의 뜻에 따라 백성을 통치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듣는 마음’입니다.  배려하는 마음이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 만의 고유한 아픔이나 약점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들과 함께 예리코를 떠나가실 때에 길가에 바르티매오라고 불리는 눈먼 거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 보다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들이 대다수였을 것입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케 하는 이야기들 이었을 것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군중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인가 물어 봅니다. 죽음의 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 날 이 사람은 생명의 언어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만나기를 고대했던 바로 나자렛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순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절히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하고 두 번씩이나 부릅니다.  뒤에 덧붙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당신이 주님이십니다. 하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아이시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낮아졌다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외칩니다.

이 간절한 외침이 기도로 들려옵니다. 간절한 그의 외침이 가슴에 아려 옵니다. 나는 이렇게 간절하게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의 외침이 나도 이제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어라고 야단을 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람들의 꾸짖음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더욱 크게 외칩니다.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여러자지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비판에 직면해서 더욱 작아지는 우리에게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깨우쳐 주는 것 같습니다. 비판에 직면하면 할수록 더욱 굳건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줄 아는 그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우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 우리가 부르짖고 당신께 나아가면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심을 보여주십니다. 그의 부르짖음 속에 이미 그의 믿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글을 쓰면서 저도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하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질문을 저에게 해 봅니다. 나는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가?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하는 이 말씀이 저의 답이기를 원합니다.

바르티메오는 자신의 실존 전체를 걸고서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대답 속에서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십니다. 믿음을 보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즉시 보게된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에수님을 따릅니다.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이 드라마가 나에게 주는 감동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합니다. 나병을 치유받고 간 사람은 아홉이었지만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이 맹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도 돌아와서 친미와 감사를 드리는 나병환자와 보게된 즉시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바르티메오와 같은 믿음의 삶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열왕기 상 3, 5)하는 주님의 말씀에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하고 청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세상적인 것을 넘어서 주님의 마음을 추구하기에 겪게 되는 많은 유혹과 시련을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묵시 2, 3)는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면서  이 말씀이 삶 안에서 실현되는 믿음의 살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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