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다(마태 13 54-58) - 2294

Author
신부님
Date
2021-07-28 21:50
Views
50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294

2021년 7월 30일 금요일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다(마태 13 54-58)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을 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 57)

배려는 사랑입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질문해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과거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지금의 모습 저 아래에 나의 과거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 역시 지금의 모습 위에 자리할 것입니다.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지금의 나를, 앞으로 나타날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 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나가 과거의 나가 아니듯이 앞으로의 나의 모습 역시 지금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좀 더 하느님 보시기에 나은 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부터 인정을 받을려고 하지말고 하느님으로 부터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저 또한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다짐해 봅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떠나갑니다.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좀 더 나은 삶의 행복을 준비하기 위해서 왔다가 떠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만남과 이별이 잦은 곳입니다.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어느 순간에 두 감정이 하나의 감정으로 바뀌어감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기쁨으로 어떤 때는 슬픔으로 하나되어 갑니다. 

시간은 기쁨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슬픔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우리가 결단하게 합니다. 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기쁨의 삶을, 시간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슬픔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된다 함은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 놓는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마태 13, 57)에 ‘왜 그럴까’하는 의문을 갖고 오랜시간을 지내 왔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슬픈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과거를 너무나 잘 아는 곳이기에 현재의 나보다는 과거의 나를 덧씌워서 현재의 나를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 고정된 시각은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고향을 찾는 것은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현재가 과거를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식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찾는 고향에는 더 이상 내가 마음 속으로 그리던 어머니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찾아가서 과거의 고향을 찾지 말라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없습니다. 이제는 현재에서 과거의 어머니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현재에서 과거의 어머니를 찾지말라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고향은 나의 과거 만을 기억하지만 현재의 나는 나의 과거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결단해야 하는 것은 과거 만을 기억하는 나의 고향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과거가 주는 아픔을 안고서도 현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향은 나를 환영하지 않아도 나는 고향을 환영하면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나아만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일곱번이나 요르단 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나아만은 자신의 나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교만을 딛고서 일어나 순명합니다. 왜 한번이 아니고 일곱번이었을까요? 과거의 나를 완벽하게 씻는과정이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쉬운 일이 사실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겉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을 보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과거는 나의 겉만 보았지만 현재는 나의 겉을 나의 안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나의 겉만 보는 과거를 두고서 현재의 나를 환영하지 못한다고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는 정지한 과거에게 생명을 주는 과거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을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이러한 지혜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일 곱번을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의 겉을 보지 않고 내면을 보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 나를 보면서 나의 주변의 사람들 역시 그럴 것임을 인정하는 여유를 갖기를 원합니다.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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