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남을 단죄하지 않는 삶 (루카  11,42-46) - 2356

Author
신부님
Date
2021-10-12 04:09
Views
38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56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남을 단죄하지 않는 삶 (루카  11,42-46)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 46)

미국 중남부 지역에서 사목 하시는 신부님들의 모임이  월(11)부터 저희 본당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만남에는 행복하게 하는 만남과 불행하게 만드는 만남이 있습니다. 신부님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이유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신뢰하는 사랑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동료 신부님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봉헌 하면서 참으로 주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함께 해주시는 신부님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 힘이 되는 만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면서 자신도 똑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혹은 대리만족을 위해서 우리는 남을 심판하고 남을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자신이 시집살이를 할 당시에는 자신은 절대로 그러한 시어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더 엄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 하면서 반신반의 했지만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2, 1)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지금의 저에게도 남의 말같이 들려오지 않음은 현재에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라는 말은 바리사이들이 자신들의 위선적인 삶 때문에 종말에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저주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합니다. 십일조는 신명기 14장 22절-29절에 그리고 레위기나 말라키서 등에도 십계명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오늘 이 구절에서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박하나 운향과 모든 채소 등은 십일조를 낼 필요가 없는 것들인데 이러한 것들까지 십일조를 바치면서 정작 해야하는 십일조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운향'은 (회록색 잎과 노란 꽃을 가진, 1미터 이상의 크기로 자라는 식물인데 향의 원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도 당연히 바쳐야 한다는 것으로 인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결 예식은 무시하셨으면서도 십일조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은 정결 예식은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십일조는 신명기 14장 28절에서 29절 “28 너희는 세 해마다 끝에, 그해에 난 소출의 십분의 일을 모두 가져다가 너희 성안에 저장해 두어라. 29 그러면 너희 성안에서, 너희와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가 와서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 그러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랑의 실천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그보다는 먼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규정된 것 이상으로 십일조를 바치면서도 사랑 실천의 의무는 소홀 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11장 43절에서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이들의 교만에 대해서 야단을 치십니다. 이 말씀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슴을 깨닫습니다. 본당신부로 사목을 하면서 본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상석에 앉는 것과  인사 받는 것에 은연 중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실제로 본당에서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위선에 대해서도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루카 11, 44) 하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9장 16절에 “들에 있다가, 칼에 맞아 죽은 이나 저절로 죽은 이, 또는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는 이는 모두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무덤과 접촉하게 되면 부정을 타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란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하는', 즉  무덤은 무덤인데 무덤이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은 무덤입니다. 이 말은 바리사이들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악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사이들은 속마음이 무덤처럼 썩어 있어서 그들과 사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표시나지 않는 무덤 같은 사람들이어서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을 부정 타게 만드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율법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 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율법교사들은 대체로 바리사이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신 말씀들은 율법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율법학자 한 사람이 자기들에게도 모욕이 되는 말씀이라고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서는 이런 말에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 게 지워 놓고' 라는 말은 자기들이 해석한 율법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 규정들은 일반 백성들이 그대로 지키기에는 무겁고 힘겨운 짐이었습니다.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말 은 율법학자 자신들은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바리사이들 이나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아주 사소한 규정들까지 세세하게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것은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형식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사람들이 지고 있는 힘겨운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 고 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학자들은 율법 규정이라 는 무거운 짐에 허덕거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는 이 두 가지 뜻이 다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 다. 율법학자들의 원래 임무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많은  나의 내면에 소리없이 자리하고 있는 위선과 교만에 대한 것들을 살펴봅니다. 내가 귀한 존재인 것처럼 나의 이웃도 하느님 안에서 참으로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
Total 1,850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1850
New 희망의 시작 - 사랑하면 지혜가 생깁니다.(루카 14,1-6) - 2370
신부님 | 22:09 | Votes 0 | Views 1
신부님 22:09 0 1
1849
New 희망의 시작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루카 6, 12 -19) - 2369
신부님 | 04:03 | Votes 2 | Views 97
신부님 04:03 2 97
1848
New 희망의 시작 - 영원한 생명을 사는 삶의 지혜(루카 13, 22-30) - 2368
신부님 | 2021.10.25 | Votes 2 | Views 235
신부님 2021.10.25 2 235
1847
New 희망의 시작 -  일상에서 체험하는 하늘나라(루카13,18-21) - 2367
신부님 | 2021.10.24 | Votes 3 | Views 312
신부님 2021.10.24 3 312
1846
New 희망의 시작 -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초월(루카 13, 10-17) - 2366
신부님 | 2021.10.23 | Votes 3 | Views 325
신부님 2021.10.23 3 325
1845
희망의 시작 -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루카 13, 1-9) - 2365
신부님 | 2021.10.21 | Votes 3 | Views 274
신부님 2021.10.21 3 274
1844
희망의 시작 -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루카 12, 54 - 59) - 2364
신부님 | 2021.10.21 | Votes 3 | Views 348
신부님 2021.10.21 3 348
1843
희망의 시작 - 인간의 어리석음의 결과(루카 12, 49 - 53) - 2363
신부님 | 2021.10.20 | Votes 2 | Views 291
신부님 2021.10.20 2 291
1842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부자의 삶(루카 12, 39-48) - 2362
신부님 | 2021.10.18 | Votes 4 | Views 330
신부님 2021.10.18 4 330
1841
희망의 시작 - 항상 깨어 있는 삶( 루카 12, 35 - 38) - 2361
신부님 | 2021.10.17 | Votes 4 | Views 336
신부님 2021.10.17 4 336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