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부자의 삶(루카 12, 39-48) - 2362

Author
신부님
Date
2021-10-18 19:59
Views
36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62

2021년 10월 20일 수요일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부자의 삶(루카 12, 39-48)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루카 12, 48)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 밤에 홈페이지 올려 놓았던 묵상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아무리 여유를 갖고서 반복해서 쓴다 하더라고 그 여유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시간이 저에게는 참 좋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하느님과 저와의 긴밀한 통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단 모임을 마치고 신부님들께서 돌아가신 그 빈자리가 저의 마음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나 봅니다. 아무래도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참 기쁨과 행복의 시간이었나 봅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부자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가끔 부자가 더 인색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인색하게 살았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음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꼭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꼭 다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가지면 가진만큼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맞고 할래 아니면 안 맞고 할래’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면 안 맞고 하는 것이 현명한 삶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 안에서 사물을 보고 판단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따뜻한 마음보다는 차가운 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묵상하게 하십니다. ‘낮아짐으로써 구원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십니다. 당연히 당신이 계시던 곳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게하기 위함 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와 이성은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게하는 참으로 귀중한 선물입니다. 그 자유 속에는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선택하도록 유혹합니다. 스스로 높아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높아짐이 하늘나라에서의 높아짐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낮아짐의 삶을 선택함으로 나의 이웃이 높아지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이웃을 이러한 삶에로 초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삶의 방법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존재들 입니다. 이제는 살아 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이 잘못된 삶을 살아가게 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됨을 강조하십니다. 그만큼 지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고 책임이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와 더불어 은총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위에 상응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적용이 일반신자들에게는 예외가 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할 때 알면서 저지르는 경우가 있고 모르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공부할 의무는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록 신자라고 해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하실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하느님의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하느님의 원칙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언제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회개’ 하는데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의 ‘때’는 여태까지 제대로 살아오지 못함에 대한 댓가를 치르고 난 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처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종말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도둑과 같이 비유하시면서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순간에 일어나는 갑작스러움을 강조하십니다. 이 말은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두가지의 책임에 대해서 강조하십니다. 그 하나는 주인의 재산을 잘 지키고 관리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들을 잘 다스리는 일입니다. 교회의 모습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전으로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외적인 화려함이 아닌 자신의 양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하느님께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가는 책임과 자신의 양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 책임입니다.

섬김을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지금 교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이러한 임무를  성실하게 임무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은 사람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심판과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심판은 이들과 같이 받게 되겠지만 그 형벌은 더욱 클 것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 48)

지금 이 순간 사제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예수님의 이 경고는 바로 저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잠시 긴장의 끈을 놓을려고 하는 저에게 빨리 허리끈을 동여매고 일어서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Total 1,880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1880
New 희망의 시작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마태 9, 27-31) - 2400
신부님 | 23:08 | Votes 0 | Views 28
신부님 23:08 0 28
1879
New 희망의 시작 -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마태 7, 21. 24 - 27) - 2399
신부님 | 2021.11.30 | Votes 2 | Views 182
신부님 2021.11.30 2 182
1878
New 희망의 시작 - 그냥 믿음으로(마태 15, 29 –37) - 2398
신부님 | 2021.11.30 | Votes 4 | Views 392
신부님 2021.11.30 4 392
1877
New 희망의 시작 -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마태 4, 18-22) - 2397
신부님 | 2021.11.28 | Votes 3 | Views 503
신부님 2021.11.28 3 503
1876
New 희망의 시작 - 기다림을 시기를 맞으며(마태 8, 5-11) - 2396
신부님 | 2021.11.27 | Votes 3 | Views 544
신부님 2021.11.27 3 544
1875
희망의 시작 - 사람의 아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자격(루카 21, 34-36) - 2395
신부님 | 2021.11.25 | Votes 5 | Views 536
신부님 2021.11.25 5 536
1874
희망의 시작 -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주는 행복(루카 21, 29-33) - 2394
신부님 | 2021.11.24 | Votes 4 | Views 587
신부님 2021.11.24 4 587
1873
희망의 시작 - 감사와 기도로 준비하는 종말(루카 21, 20-28) - 2393
신부님 | 2021.11.23 | Votes 4 | Views 504
신부님 2021.11.23 4 504
1872
희망의 시작 -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루카 21, 12-19) - 2392
신부님 | 2021.11.22 | Votes 6 | Views 503
신부님 2021.11.22 6 503
1871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의 분노의 본질(루카 21, 5-11) - 2391
신부님 | 2021.11.21 | Votes 6 | Views 570
신부님 2021.11.21 6 570

Enquire now

Give us a call or fill in the form below and we will contact you. We endeavor to answer all inquiries within 24 hours on business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