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기다림을 시기를 맞으며(마태 8, 5-11) - 2396

Author
신부님
Date
2021-11-27 22:03
Views
126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96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기다림을 시기를 맞으며(마태 8, 5-11)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 8)

우리의 인간사는 관계에서 시작하고 관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날 때부터 이 관계는 시작됩니다. 언젠가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꽉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 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 하고 깊은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먹을 쥐는 관계 손을 펴는 관계, 시작의 모습이고 끝의 모습이지만 아마도 이 끝은 새로운 시작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소유하기 위한 관계에서 비움으로 맺는 관계여야 함을 깨닫습니다.

연장선 상에서 자신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져 봅니다.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께 보여지는 저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편안함을 주는 지 아니면 근접하기 어려운 모습인지 입니다.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이면 편하게 대하실텐데 이 그대로의 모습에 가식의 손이 더해진 모습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한 이방인의  겸손한 모습을 소개해 줍니다. 이 겸손한 이방인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음에 놀라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예수님은 로마군의 간부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고서 놀라십니다.  

이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도움을 청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자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문제나 자신의 가족의 문제도 아닌 자신의 종의 병을 갖고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종이 중풍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그를 겸손하게 합니다. 이 겸손이 당시의 유다의 지배계급들이 배척하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알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어도 그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그러한 능력을 믿고서 확신을 갖고서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사람들은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봅니다. 메시아 앞에선 자신을 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주님의  능력에 의탁 합니다. 자기의 집으로 가시겠다는 에수님을 굳이 못가게 제지 합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한 말씀만 하시면 당연히 나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당시의 누구도 갖지 못했던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백인대장의 대답입니다. 자신이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순명을 하듯이 예수님께서도 말씀만 하시면 자신의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없이 말씀 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그러한 믿음과 확신에 감탄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믿음를 본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는 생명입니다. 죄의 싹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믿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닌 하느님이 주인이 되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황당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일반인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불평과 불만이 없습니다. 오로지 감사와 찬양 만이 있습니다. 모세가 눈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두고서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이유를 알았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명예와 권력과 부는 찰라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 생명임을 우리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백인대장의 신앙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기다림의 시기를 겸손과 사랑으로 더욱더 견고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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