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마태 7, 6. 12-14) - 2568

Author
신부님
Date
2022-06-20 07:58
Views
560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68

2022년 6월 21일 화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마태 7, 6. 12-14)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 12)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와 예수회원 여러분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눈 앞의 이익을 취하다가 더 많은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는 표현도 그 의미로는 가까울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람과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람과 롯은 함께 유목생활을 하면서 서로가 함께 지내기가 힘들 정도로 부자가 됩니다. 한정된 땅에서 많은 양과 소들 그리고 천막을 치면서 함께 지내기가 힘들게 되면서 서로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조카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앞으로 펼쳐진 땅에서 네가 오른 쪽을 택하면 나는 왼쪽으로 네가 왼쪽을 택하면 나는 오른 쪽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선택권을 롯에게 줍니다.

롯은 아브람의 제안에 한번의 양보도 없이 덥석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를 이용해서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갑니다. 언제나  아브람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롯은 한 번쯤은 인사치레라도 양보를 할 만도 하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 앞에 삼촌 아브람의 마음이 바뀔까 즉시 선택을 합니다. 눈 앞의 이익에 어두운 소인배의 모습입니다. 아브람과 롯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아브람의 덕을 배우고자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앞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내세우기란 참으로 쉽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깎아내리거나 모함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기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고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기에 겸손한 사람은 현재 주어진 여건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이 있기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감사함에 있는 것입니다.

저의 주변에 있는 어떤 분은 남에게 베풀기는 좋아하지만 남으로부터 신세를 지는 것은 싫어합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분의 그러한 삶에 자세에 대해서 나에게도 필요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함께 지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에도 나의 능력의 한계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내가 신세를 져야 할 일이 있으면 무작정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그러한 도움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 과도하게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교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도움이 필요할  때 겸손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시는 이 말씀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고백이 전제된 청함이고 찾는 것이고 동시에 두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나의 부족함의 솔직한 인정은 청할 때에도 간절하고 겸손하게 청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 때에 참으로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 겸손한 자세란 바로 자기 위주의 사랑의 실천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모범은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인 것입니다.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아브람의 겸양의 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먼저 내가 남에게 해주는 삶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신의 악습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의 삶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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