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평화를 빌어주는 삶(루카 10,1-12) - 332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29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평화를 빌어주는 삶(루카 10,1-12)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 2)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에 이어 중동전쟁의 격화와 자연재해로 인해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어려운 사황입니다. 평화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평화를 빌어 주는 것을 파견의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평화에 대해서 말할 때 세상적인 평화와 성서적인 평화는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서적인 평화와 세상적인 평화는 그 근본적인 출처와 목적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서적인 평화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된 내면적인 평화와 조화를 말하며, 세상적인 평화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둘의 차이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성서에서의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שָׁלוֹם)"으로 표현되며, 단순히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고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샬롬은 하느님과의 화해, 영적 온전함, 모든 창조물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성서적인 평화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내적인 평안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라는 말씀에서도 이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 평화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죄로 안한 하느님과의 단절된 관계에서 하느님과 화해할 때 오는 내적인 평화와 영적인 안정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 평화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됩니다.
성서적인 평화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 성서적인 평화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상적인 평화는 주로 갈등의 부재나 안정된 사회 질서를 의미합니다. 이는 전쟁, 폭력, 불안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지만, 그 평화는 종종 일시적이고 외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됩니다. 정치적, 사회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지만, 인간의 불완전함과 갈등으로 인해 이 평화는 언제나 깨질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평화는 외부적인 환경에 중점을 둡니다. 전쟁이 없고, 사회적 안정이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하며, 정부나 국제기구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평화는 외적인 조건에 따라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평화는 유지되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적인 평화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며,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유지됩니다. 이는 궁극적인 평화라기보다는 특정 시기나 상황에서의 안정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성서적인 평화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시작되는 내면의 평화로,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평화는 인간의 노력과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유지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평화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서적인 평화를 통해 우리가 세상의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성서적인 평화를 세상에 전파하고자 부르심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일흔 두 제자들을 사목의 현장으로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제자된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씩 짝으로 파견하십니다. 소유하지 말고 평화를 빌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곳에 머물러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떠날 때는 과감한 단절을 요구하십니다.
두 사람씩 함께 파견한다는 것은 ‘관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혼자서 사는 삶이 소유의 삶을 의미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은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죽고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서로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하나되는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그 삶이 바로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모습을 단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들은 먼저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평화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평화라면 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낙원에서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빠진 다음에 당신의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평화’를 빌어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둘째로, 여행을 할 때마다 짐을 꾸린다고 몇일을 고민하는 자신을 들여다 봅니다. 언제는 가기 전에는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갈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결국에는 여행 당일이 되면 허겁지겁 짐을 싸서 떠납니다. 그런데 몇일 동안 고민하면서 싼 짐을 여행 중에 다 사용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가져왔슴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냥 짐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편하기 위한 준비가 아닌 내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마음가짐입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 수가 있는데 단지 없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기에 짐을 늘리는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평화는 많이 소유함에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부족함 속에서도 평화는 있습니다. 부족함의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 부족함을 하느님께서 채워주신다는 확신을 갖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 부족함을 감당함으로서 더 나은 제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청빈을 통한 물질로부터의 자유함을 배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세째로, 당신께서 파견하시는 제자들에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으니까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삶의 모범을 통해서 일꾼들을 양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제자됨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이 험한 세상에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드러내십니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가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하는 사람들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부족한 상태에서도 평화를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어떤 집에 머무르게 되면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됨의 조건은 투신임을 깨닫습니다.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평화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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