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시작 -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는 삶(루카 13, 31-35)- 3363
Author
신부님
Date
2024-10-25 02:08
Views
42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62
20124년 10월 31일 목요일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는 삶(루카 13, 31-35)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 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3, 31)
예외가 없는 법칙은 없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바리사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예수님을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안전을 생각하는 바리사이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항상 예외가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의 고국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기도가 많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화 됩니다. 그 예외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시 한번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수 많은 협박과 위협 속에서도 당당하신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그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질문해 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절망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자랑스런 모습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의 부족함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쥘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지킬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움’은 우리가 갖게 되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시켜줍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비움’의 살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비움’의 삶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에페 6, 10-11)하고 말합니다.
언제나 기도의 삶을 살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고 살아가시는 분이십니다. 혼돈의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시는 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을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때’란 앞 부분과 연결하기 위한 막연한 시간 표현이긴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때인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지 않으시고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기도 하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시며 병든 사람을 고쳐주기도 하시면서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루까13:22).
오늘 본문 앞서서 예수님께서 여행 중에 하셨던 일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슴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당신께 물어보는 사람에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막 대답하셨을 때라는 말입니다. 그 때에 바리사이 몇이 예수님께 다가가서 말하기를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의 9장 9절에서 헤로데는 호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했었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헤로데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자연히 자신의 왕권도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 을 위협해서 자기의 통치 영역에서 떠나게 하면 폭동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은 헤로데가 다스리던 갈릴래아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경고 때문에 두려워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헤로데의 살해 의도가 무서워서 당신의 여정을 변경할 계획이 전혀 없으십니다. 오히려 그 의사를 전해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여우'는 간사함을 나타냅니다. 또 힘센 사자에 비해 하찮은 짐승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정정당당하게 추방령을 내리지 못하고 간사하게 협박하는 것 때문에 헤로데를 여우라고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또 헤로데 따위는 대수 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는 말씀은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계획대로 해야 할 일을 하며 가겠고그 일은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죽음의 날을 뜻합니다. '내 일'은 예수님 의 메시아로서의 사명 수행을 뜻합니다. '마친다.' 라는 말은 '완성한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선교활동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헤로데와 같은 수 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힘으로 무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하루를 시작하면서 제1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을 하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체험하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세상의 권력 앞에서 주눅들지 않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예수님께서 살아 가셨던 그 삶의 여정에 함께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124년 10월 31일 목요일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는 삶(루카 13, 31-35)
바로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 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3, 31)
예외가 없는 법칙은 없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바리사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예수님을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안전을 생각하는 바리사이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항상 예외가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의 고국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기도가 많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화 됩니다. 그 예외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시 한번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수 많은 협박과 위협 속에서도 당당하신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그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질문해 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절망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자랑스런 모습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의 부족함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쥘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지킬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움’은 우리가 갖게 되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시켜줍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비움’의 살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비움’의 삶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에페 6, 10-11)하고 말합니다.
언제나 기도의 삶을 살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고 살아가시는 분이십니다. 혼돈의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시는 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을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때’란 앞 부분과 연결하기 위한 막연한 시간 표현이긴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때인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지 않으시고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기도 하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시며 병든 사람을 고쳐주기도 하시면서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루까13:22).
오늘 본문 앞서서 예수님께서 여행 중에 하셨던 일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슴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당신께 물어보는 사람에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막 대답하셨을 때라는 말입니다. 그 때에 바리사이 몇이 예수님께 다가가서 말하기를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의 9장 9절에서 헤로데는 호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했었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헤로데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자연히 자신의 왕권도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 을 위협해서 자기의 통치 영역에서 떠나게 하면 폭동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은 헤로데가 다스리던 갈릴래아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경고 때문에 두려워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헤로데의 살해 의도가 무서워서 당신의 여정을 변경할 계획이 전혀 없으십니다. 오히려 그 의사를 전해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여우'는 간사함을 나타냅니다. 또 힘센 사자에 비해 하찮은 짐승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정정당당하게 추방령을 내리지 못하고 간사하게 협박하는 것 때문에 헤로데를 여우라고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또 헤로데 따위는 대수 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는 말씀은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계획대로 해야 할 일을 하며 가겠고그 일은 머지않아 끝나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죽음의 날을 뜻합니다. '내 일'은 예수님 의 메시아로서의 사명 수행을 뜻합니다. '마친다.' 라는 말은 '완성한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선교활동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헤로데와 같은 수 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힘으로 무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하루를 시작하면서 제1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을 하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체험하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세상의 권력 앞에서 주눅들지 않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예수님께서 살아 가셨던 그 삶의 여정에 함께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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