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신비(요한 6, 35-40) - 3522

Author
신부님
Date
2025-05-05 13:24
Views
92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22

2025년 5월 7일 수요일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신비(요한 6, 35-40)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고난과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재난이나 설명할 수 없는 아픔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묻고, 때로는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어떤 불행도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며, 그 어떤 어둠도 빛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바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신비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 사도행전 6장에서 스테파노의 죽음은 교회에 큰박해를 가져왔습니다. 하느님의 사업이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박해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6, 4).

박해를 통해서 교회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교회는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순교의 피는 패배의 피가 아닌 하늘나라의 월계관을 쓰는 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순교의 피는 바로 세상을 이기는 피인 것입니다.  밀알 하나가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영원한 삶을 위하여 죽는다는 말씀이 이렇게 실현됩니다.

사울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교회에 대한 박해를 시작합니다. 스테파노에게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그를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질 때 함께 했던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사도 7, 58)고 합니다.

이는 그만큼 사울이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은 스테파노의 죽음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는 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넣었습니다(사도 8, 3).” 는 보도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모습에서 극단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사울의 이러한 열정을 당신의  교회를 옹호하고 확장시키는 열정으로 변화시킬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셨나 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 28)을 우리는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바로 우리 영혼의 궁극적인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성공이나 소유, 관계도 채울 수 없는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갈망을 오직 예수님 당신 만이 영원히 만족시키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매일 음식을 먹어야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듯, 우리는 매일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주십니다. 37절에서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39절과 40절에서는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도 평안과 담대함을 누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미래는 우리의 연약함이나 상황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느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굳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순간에 죽으면 그 순간에는 죽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 한사람의 인내와 겸손함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경우가 많음을 체험합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나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하느님께서 죽이시지만 내가 하느님 때문에 죽으면 하느님께서 나를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 39-40) 는 말씀을 간직하면서 이 부활시기를 지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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