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추세를 거스르는 삶(요한 6,60ㄴ-69 - 352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25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추세를 거스르는 삶(요한 6,60ㄴ-69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 68-69)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 답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일상의 삶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제약 조건이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도 나를 떠나고 싶으냐?’ 하고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이 울고 싶은데 빰을 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기에 ‘아니오’ 하고 과감하게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삶이 저절도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나 교묘한 말장난으로 다가오는 사탄은 우리의 순간적인 흐트러짐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어떤 것이 대세다.” 하는 말을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자주 들었습니다. 이 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경향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세인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게 들려왔습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나는 이러한 변화에 너무나 뒤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세를 따르기에는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고 살아가기에는 즉 이말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아 하는데 그러기에는 용기가 없습니다. 따라서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이고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며 잘 적응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가시던 당시에, 예수님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말씀이 유다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을 목격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질문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빵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는 예수님과 더이상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질문은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굳은 믿음으로 당신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초대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 68-69)
이 대답을 보면,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을 따르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 줍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성체성사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 전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메시아’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알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의 대표로서 발언한 베드로의 이 믿음고백은 당시의 추세에 역행하는 말입니다.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반대세력의 박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출세를 포기해야 합니다. 대중으로부터 소외를 감당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도 “너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질문하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저의 대답이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하지만 이 대답에 머뭇거리는 자신을 봅니다. 아직은 대세를 거부하기에는 믿음이 부족한가 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에는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이는 ‘타협’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 아니면 ‘아니오’ 만으로 답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너무나 많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해햐 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보화를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 눈은 바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실천함으로서 간직할 수 있는 눈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추세에 영합하지 않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비록 지금의 모습으로는 주님 앞에 서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이지만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의 현재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의 미래를 보시는 분이시기에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향하여 희망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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