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인생에서 단 하나 영원히 남는 행복?(루카 15,1-10) - 377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3778
2025년 11월 6일 목요일
인생에서 단 하나 영원히 남는 행복?(루카 15,1-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7)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형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되는지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려 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엄숙한 경고와 예수님의 따뜻한 비유를 통해, 우리는 겸손과 자비라는 두 가지 핵심 진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 교회 내에서 발생했던 사소한 율법 문제(음식, 절기 등)로 인해 신자들이 서로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는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선언하며 말씀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로마 14,8)
이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소유라면, 형제를 판단하고 비난할 권한은 오직 우리 모두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판단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탈무드의 가르침처럼, “친구를 심판하지 마라. 그가 너와 똑같은 처지에 놓일 때까지는.” 우리는 타인의 깊은 사정과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에게서 불행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형제를 비난하며 스스로의 의로움을 확인하려는 교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죄악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비판하기 전에, 하느님 앞에 설 우리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15,1-10)은 예수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어울리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변호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하느님의 관심과 기쁨이 이미 안전한 곳에 있는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길을 잃었다가 돌아온 '회개하는 한 사람’ 에게 있음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7)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공로나 업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자녀를 향한 집요한 자비임을 보여줍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목자의 사랑에 대해 “목자가 양을 찾는 것은 그 양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의 자리가 가장 의로운 이의 자리보다 높다는 탈무드의 가르침도 이 복음의 메시지를 뒷받침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찾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자비로 완성됩니다. 우리는 타인을 심판할 자격이 없으며, 오직 앨버트 슈바이처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단 하나 영원히 남는 행복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기쁨”, 즉 “용서의 총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잃은 양을 찾아 기뻐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본받아, 타인을 향한 비판의 시선을 거두고 자비의 시선으로 바라봅시다. 또한,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돌아가야 할 잃은 양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끊임없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큰 기쁨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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